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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Jan 15. 2020

소설<Missing> 2화. 다시 돌아온 아이(2)

대낮의 중앙 시장은 평화로웠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은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들고 상점 이곳저곳을 오가며 가격 흥정을 했고, 몇몇은 아예 자리잡고 앉아 주인과 잡담을 나누었다. 오가는 이 없는 상점 주인들은 TV를 틀어놓고 몇 번이고 봤던 드라마를 보았다. 

시장 중앙에 있는 순대국밥집은 이런 한가한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SBC 아침 방송 ‘모닝가이드’에 나온 맛집의 위엄을 자랑하듯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방에선 아주머니 두 분이 끊임없이 순대썰기와 국 데우기를 반복했고, 식당 안에선 이국적으로 생긴 중년의 여자가 국밥을 나르고 있었다. 안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았다. 2인용 테이블 10개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여자는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기계적으로 대충 행주로 테이블로 훔친 후 순대국밥을 밀어넣었다. 다소 불친절한 모습이었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이곳 순대국밥 맛은 끝내줬다. 


“이 자식아, 내가 몇 번을 전화했는지 알아?”


입구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내를 향해 국밥집 주인 아들이자 형사인 웅이가 어기적거리며 다가왔다.  


“이모! 나 국밥 줄 때 머릿고기 좀 많이 넣어줘요. 어떻게 여긴 올때마다 양이 줄어드는 것 같아.”


턱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사내는 험상궂은 외모와 다르게 밝은 목소리로 국밥 한 그릇을 외쳤다. 


“야, 너 지금 누구 보고 이모래!”

“누나, 죄송요. 아무튼 머릿고기 좀 팍팍 줘요, 누나!”


두 사내의 외침에 무표정하게 일하던 중년의 여자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피식’ 실소를 짓고는 잠시 후 고기가 두툼히 올라간 순대국밥을 사내에게 내밀었다. 


“종훈이 맞지? 요새 통 안 와서 나쁜 놈들한테 칼이라도 맞은 줄 알았는데, 사지는 멀쩡하네. 근데 꼴이 그게 뭐야? 거지왕 김춘삼이 따로 없어.”


그도 그럴 것이 종훈은 떡진 더벅머리에 꼬질꼬질한 야구모자를 눌러썼고, 유행 지난 지 10년은 넘어보이는 항공점퍼에 무릎이 툭 튀어나온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었다. 행색만 보면 영락없는 아저씨었지만, 까무잡잡하면서도 탄력있는 피부에 흑백이 분명한 눈, 오똑하면서 날카로운 콧날, 날렵한 턱선이 그가 학창시절에 제법 초콜릿 좀 받았을 법한 얼굴이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종훈은 두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고 잠시 정지 상태로 있은 뒤, 숟가락을 들고 국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너 지금 기도한거야? 결국 옆집 권사님 꾀임에 넘어가서 교회 나가기 시작했어? 야, 동기 좋은게 뭐야, 그렇게 사는게 힘들었으면 연락 좀 하지! 의지할 곳이 없어서 신에게 의지를 해?”


종훈의 종교적 의식을 보고 웅이는 다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오바는. 기독교 그딴 건 아니고, 그냥 오늘 밥 한끼에 대한 감사야. 어제 SBC 다큐 보니까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더라고.”


다시 국밥은 입에 구겨넣는 그. 


“아, 진짜. 이게 정직 당하더니 점점 이상해지네. 그냥 경찰 때려치고 NGO 단체에 들어가서 평생 봉사하면서 사는게 어때?”

“그럴까?”

“그럴까는 뭐가 그럴까야! 아우~ 속 터져! 넌 박은진 그 기집애, 거짓 진술 때문에 폭행 혐의에 정직까지 당했는데 감사라는 단어가 입 밖에 나오냐?”

“그 이야긴 그만 하지.”


종훈은 나머지 밥과 고기를 입에 넣은 후, 남은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그러지 말고. 좀 억울하면 억울하다. 속상하면 속상하다. 말 좀 하고 살자. 너 답답하지도 않아? 괜찮은 거야?”

“안 괜찮으면 어쩔건데?”


걱정 섞인 눈으로  종훈을 바라보던 웅은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두 번 저었다.  


“됐고! 청장님께서 제안한 거 어떻게 하기로 했어?”

“사라졌다가 17년만에 돌아온 김덕수 딸, 조사하는 거?”

“응. 팀장님한테 들었는데 그거 제대로 하면 복직 시기도 당겨주고 사례금도 준다면서. 야, 그런 제안이 어딨냐?”

“생각해 봤는데, 별로 하고 싶지 않아. 그거 파다보면 피해자 뿐 아니라 가족들도 괴로워져. 게다가 딸내미가 예전 기억이 없다며? 기억이 없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굉장히 충격적인 일을 당했으니까 머리가 다신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봉인해버린 거라고. 그걸 왜 굳이 꺼내? 그리고 그 제안이 그렇게 좋아보이면 니가 하면 되잖아.”

“난 지금 경신동 화재랑 파라구 연쇄 강도 살인 사건 때문에 정신 없거든? 갑자기 형철 선배가 그만두는 바람에 경신동 화재 사건 마무리를 맡아버렸다고 지난번에 말했잖아.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않냐? 5살 때 사라진 아이가 집으로 제발로 찾아왔다는게. 그 아이 없어졌을 때 선거 때문에 수사도 제대로 못했잖아. 그것만 없었어도 걔 금방 찾았을걸. 당시 김덕수가 당선 전이라 돈 없고 빽이 없기도 했고 선거 때문에 경찰 인력 초 비상이라 초동 수사를 허술하게 하는 바람에 애 못찾은거잖아.”

“그럼 정식 수사 요청을 하면 되잖아.”

“김덕수가 그냥 김덕수냐? 아무리 임기 끝난 시장이라도 정치권에선 제법 힘 좀 쓰는 사람이야. 안 그래도 딸 돌아왔다는 소식이 이미 퍼질대로 퍼져서 겨우 기자들 입 막아뒀는데, 공식 수사한다는 소문이라도 나봐. 기레기들이 어설프게 뒷조사해서 그 딸내미를 또 다른 지옥에 집어 넣을걸. 그리고 처음엔 김덕수도 수사 안 한다고 했어. 딸 괴롭히기 싫다고.”

“근데 왜 마음을 바꿨어?”

“딸이 수사하고 싶다고 했대. 자기가 누구였는지, 자기를 그렇게 만든 사람은 또 누군지 궁금하다고.”

“자기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라니?”




따뜻한 물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바디샤워향은 달콤하면서도 시원했다. 한참을 샤워기 앞에 서 있던 미주는 물을 잠그고 흐릿한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곤 손으로 거울에 뿌옇게 묻은 습기를 닦아냈다. 


“김… 미주….”


낯설지만 익숙한 얼굴.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이게 정말 나인걸까.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긴 잠에서 깨어난지 일주일이 흘렀지만, 미주는 지금 상황이 여전히 낯설었다. 5살 때까지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자신의 이름과 가족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다.  


“미주야, 수건 가지고 왔어.”


해주가 화장실 문을 조심스레 열며 얼굴을 내밀었다. 


“으아악!”


기겁을 하며 발랑 뒤로 나자빠지는 그녀.


“왜 그래?”


그녀의 돌발 행동에 미주는 놀라 물었다. 


“너…. 너…. 등…. 등이….”


미주는 자신의 등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그녀의 등은 마치 오래되어 썩기 직전의 나무 껍질 같았다. 짙은 갈색의 살이 한쪽으로 눌러 붙어있기도 했고, 물결 무늬처럼 굽이쳐보이는 곳도 있었다. 꽤나 여러 번 화상을 입은 흔적이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자신의 등을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고는 참으로 침착하게 수건으로 몸에 남아있던 물기를 닦은 후 옷을 갈아입고 부모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야겠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또렷한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저녁 모임으로 외출 준비에 한창이던 두 사람은 놀란 듯 미주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온 물방울들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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