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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Jan 23. 2020

소설<Missing>3화. 수상한 형사

뒤늦게 찾아온 꽃샘추위에 활짝 핀 봄 꽃들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장갑과 목도리를 다시 꺼내어 몸을 꽁꽁 싸맨 사람들은 차가운 바람에 어깨를 바짝 웅크리며 제갈길을 갔다. 

지난주 내내 현관문과 창문이 활짝 열려있던 미주네 집은 모든 문이 꼭꼭 닫혀있었다. 마당을 자주 들락날락하던 고등어 줄무늬 고양이는 온기가 있는 보일러실로 쏙 들어가 버리곤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10년은 더 되어 보이는 짙은 남색 차가 천천히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차는 세차를 안 한지 몇 달은 된 듯 회색 먼지와 허연 흙탕물이 뒤엉켜 있었고, 앞 유리창 왼쪽엔 주차금지 딱지도 붙어있었다. 


“저긴가?”


종훈은 미주의 집 담장 아래에 차를 부드럽게 주차했다. 그리고는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백미러를 돌려 얼굴을 비춰보았다. 아침에 면도한 턱은 깔끔했고, 머리도 단정했다. 그는 얼굴이 영 어색한지, 오른손으로 턱을 쓸어내린 후, 앞머리를 매만졌다. 


“쓸데없이 잘 생겼단 말이야. 이 일만 아니었으면 계속 거지 컨셉으로 있으려고 했는데.”


비공식적이지만, 정확히 세 달만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피가 끓어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웅이에게 미주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묘하게 이 사건이 궁금해졌고, 미주의 아버지인 김갑수와 이야기를 나눈 후 고민 끝에 사건을 맡기로 했다. 

그는 차에서 내려 대문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누구세요?”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흘러나왔다. 


“이종훈 형사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딸칵’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자, 종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집은 제법 오래된 듯 색이 바래었고, 현관문은 페인트칠이 살짝 벗겨져 있었다. 마당은 화려하거나 크진 않았지만 구석구석 사람의 손이 닿은 듯 정감이 갔다. 정치계에서 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집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소박했다. 


“일찍 오셨네요.”


앞치마를 두른 미주의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그를 맞이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종훈입니다.”


종훈은 그녀를 향해 깍듯이 인사했다. 미주의 엄마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미주 엄마, 이현주예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집 안은 따뜻했다. 벽엔 가족사진이 걸려있었고, 곳곳에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서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미주야, 형사님 오셨어.”


엄마가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미주를 향해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이종훈입니다.”


가슴까지 길게 머리를 늘어뜨린 미주는 진청바지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하얀 얼굴 때문인지 붉은 입술이 돋보였고, 쌍꺼풀이 없는 눈은 맑고 깊었다. 사진에서 봤던 귀신같던 모습과 전혀 달라서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김미주예요. 반갑습니다.”


미주는 무표정하게 말했고, 종훈은 미주 엄마의 안내에 따라 소파 옆 간이 의자를  끌고 와 그녀와 마주 보고 앉았다. 


“잠깐 마실 것 좀 내올게요.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미주 엄마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엔 해주가 사과를 깎으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종훈과 미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무슨 형사가 저렇게 잘생겼어? 나이에 비해 동안인데?”

“응. 나이에 비해 제법 실력이 좋았다나 봐. 그런데 몇 달 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어서 정직됐다고 하더라고.”

“무슨 불미스러운 일?”

“폭행이라는데….”

“인상 좋게 생겼는데, 성격은 별론가 봐.”

“모르지, 사람 속은. 네 아빠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곤 했는데 난 아무래도 마음에 좀 걸려...”

“에이, 아무렴 아빠가 미주한테 이상한 사람을 붙여줬을까.”

“그렇겠지?”


종훈은 미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그녀도 그런 그를 아무 표정 없이 바라보았다. 둘 사이엔 잠시 정적이 흘렀고, 종훈은 적당한 말을 생각해낸 듯 겨우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오늘 잘 잤어? 아침은 먹었어?”


미주는 약간은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세요. 제 근황 물어보러 오신 거 아니잖아요.”


종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성격 화끈하네. 좋아. 본론으로 들어갈게. 유괴 전인 5살 이전 기억 외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네. 집으로 돌아왔을 땐 제가 누군지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서서히 어릴 적 기억이 돌아온 거고요.”


미주의 눈빛이 다소 불안해졌고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그녀를 의식한 듯, 유치원 선생님처럼 하이톤의 밝은 목소리로 커다란 손짓을 하며 물었다. 


“그렇구나. 그럼 이제 아저씨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정말 기억이 아무것도 나지 않는 거야? 잘 때 무서운 꿈을 꾸고 그러진 않아?”

“꿈을 꾸긴 하는데 깨어나면 기억이 안 나요.”


고개를 젓는 그녀를 보며 종훈은 눈을 크게 꿈뻑이며 질문을 이었다. 


“가장 최근에 기억나는 건 뭐야? 기억할 때 괴롭고 그러면 아저씨가 손 잡아 줄게. 여긴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 달래는 듯한 말투에 미주가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부엌에서 둘을 바라보던 미주 엄마와 해주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저 남자 왜 저래? 미쳤나 봐. 경찰에 신고할까?”

“목소리 좀 낮춰. 다 들리겠다. 경찰을 경찰한테 신고해도 돼? 119에 신고하는 게 낫지 않아?”


모녀의 목소리가 부엌을 거쳐 거실까지 들렸다. 미주는 한 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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