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청년 여성에겐 아무런 도움과 관심이 없는 사회
더위만으로도 중증 암환자에게는 가혹했던 올해 여름, 한참 암성통증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4기 환자인 나는 임상치료가 유일하게 암 진행을 더디게 하는 방법이었지만, 무엇도 확실한 것은 없고 결국 기존에 임상으로 치료받던 방법이 내게 효과가 없었다. 다른 임상 치료의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병원의 이야기에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동시에 두려웠다. 이 주만 참아보자 했지만 이미 기존에 이런 경험으로 미루어 치료를 쉬는 몇 주 사이에 상태가 급격이 나빠지고 전이가 되곤 했으니까.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 주 정도 기다리면 다른 임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연락을 주겠다는 병원은 삼 주가 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사이 그동안 겪었던 암통증 중에 가장 큰 통증을 겪어야 했다. 약을 쓰지 않은 몸은 그야말로 암에 속수무책이니까.
올해 봄 어렵게 구한 서울시 뉴딜일자리의 임금노동을 하고 있던 나는, 밥도 먹지 못하고 어느 날은 뼈에 전이된 암 통증에 출근은커녕 몸을 뒤척이지조차 못했다. 마약성진통제를 먹으려 겨우 기어서 물을 먹는 정도였다.
정신장애와 폭력성을 늘 달고 집에만 있는 남동생과 누군가를 돌봐본 경험이 전혀 없이 본인도 늘 건강이 좋지 못한 부친, 집은 쓰레기장같이 된 지 오래였고 위생상태는 어디 이야기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이런 집에서 나는 임금을 위해 암치료를 하면서 동시에 무리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 사실은 이 쓰레기 같은 집에서 방에만 처박혀있고 싶진 않았던 것도 컸다. 그런데 이렇게 악화가 되니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부득이 일을 바로 그만두었고 통증에 눈물흘리며 누워있는 시간만 늘었다. 아무것도 먹지도 움직이지도 못해 급격히 체중이 줄었다. 그 말은 온몸에 근육이 모두 급격히 줄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중환자가 된 노인이 된 기분이었다.
누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통증을 잊기 위해 작은 폰 화면으로 영상을 계속 틀어놓고 있거나 약에 취해 잠드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이에 내가 밥을 먹었는지 상태가 어떤지 가족 구성원은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돌봄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었지만 혈연 가족은 실질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실 내게 당연히 예상한 바였으며, 가족에게 돌봄을 받는 것은 바라는 바도 아니었다. 애저녁에 독립해 살고 싶었지만 어설프게 가난한 나는 부모 집에 얹혀 사는 방도 외엔 딱히 없었다.
돌봄에 소외되어 있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당장에 국가에, 사회서비스에 돌봄을 받을 방도를 찾기는 어려웠다. 주민센터에 문의했지만 부모의 재산, 소득 때문에 금전적인 도움은 아마 어려울 거란 답변을 받았고, 대부분 노인에게만 해당되는 돌봄서비스도 내게 해당되지 않았다.
샤워를 하다 화장실에서 쓰러져 가슴뼈에 금이 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암요양병원에 가야하나 고민하다가도 내가 경험했던 요양병원, 암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고가의 치료들을 반 강요처럼 늘 가지고 돈을 써야 편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본적 의료시장이 나는 불편하기만 했다.
나는 그래서 여전히 혼자였다. 그 와중에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SNS에 남겼더니 뭐라도 먹이겠다고 달려와 준 친구들 덕에 겨우 일어날 기운 정도를 차렸다. 극심한 빈혈에 급격히 약해진 몸을 겨우 끌고 병원에 가 빨리 다음 치료를 요구했더니 시작한 다음 임상 치료 덕에 죽지는 않고 현재까지 살아 지내고 있다.
일을 그만 두고서는 병원에 가는 날 외에는 거의 내 좁고 더러운 방에 누워만 지냈다. 그것도 두어 달이 지났다.
나는 아마 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들어가게 될 거다. 최근 임상치료가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다는 병원의 이야기도 있었고, 급격히 약해진 몸에 부작용과 심해진 암 증상에 무너진 면역력은 자꾸 예상치못한 증상을 나타내고 있었으니까. 열이 없는 날보다 있는 날, 조금만 걸어도 심장이 너무 뛰어 숨이 차고, 혈액순환이 안 되어 눈이 안 보이거나 쓰러지는 날도 늘어나게 될거다.
요 며칠 암성통증으로 꼬박 5일 정도를 앓았더니 잇몸 전체가 붓고 피나고 구내염이 생겨 섭취가 어려운게 최근의 일이다. 나는 아마 내가 뭘 해야할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아니면 부득이 어떤 의료서비스를 구매해야 할 지 매일같이 고민하고 절망하고 의아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