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계열이 없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난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집 작은인간은 앞으로 어떤 꿈을 펼쳐나가게 될까?
자기 자식이 한없이 매력적이고, 이뻐 보이는 고슴도치 아빠의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인스타그램의 아기모델 모집 광고였다. 나름 현실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 자부하기에 모델 모집을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수작이겠구나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은 '더 알아보기' 링크를 클릭하고 있었다.
개인정보와 아기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니 몇일 후 광고를 낸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돈을 내는 건 오디션 이후이므로, 우선은 오디션을 한번 보는 게 어떻겠냐는, 눈에 뻔히 보이는 영업방식으로 접근을 해왔다. 하지만 현실을 너무나 직시한 나머지 미래까지 내다보게 된 남편은 OK를 외치며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로 찾아갔다.
남편은 주변에 자녀가 아기모델을 하고 있는 지인이 있다. 상황설명을 대충 해주니, 백프로 호구되는 짓이라며 차라리 6살이 되면 제대로 된 오디션을 보라 조언해 줬다. 아역배우는 6살부터 시작이며, 그전에 활동한 내역은 참고사항일 뿐 경력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이제 막 5살이 된 우리집 작은인간은 오디션을 볼 수 조차 없는 나이이며, 봐도 의미가 없다는 논리였다.
남편은 지인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그리고 고슴도치 아빠의 사고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6살부터는 오디션을 보고 정식으로 촬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집안에 끼 있는 사람은 없다. 고로 우리 아이도 끼가 없을 가능성이 높고, 오디션을 봐도 합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오디션조차 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제 5살이 된 우리 아이가 경쟁을 거치지 않고 티비에 출연할 수 있는 기간은 지금이 마지막이다.
'비록 돈을 내고 촬영하는 조건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우리집 작은인간은 억지로 미래를 내다본 아빠의 손에 이끌려 아역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갔다. 고작 3회이지만 케이블티비 송출용 프로그램에 무조건 출연시킨다는 조건으로, 3백만원이 넘는 거금과 함께.
맞벌이를 하는 우리부부의 주말은 이제 새로운 일정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토요일에는 엔터사 교육을 보내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야하니 1박 2일간 교외로 짧은 콧바람을 쐬러 다녀오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몇 개월을 보냈다. 아내가 힘들어할 때면 남편은 살짝 미안했다.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밀어붙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지인도, 남편의 부모님도, 심지어 아내조차도 티비 출연 한번 해보겠다고 거금을 들여 애를 주말마다 혹사시키는 것은 반대했었다. 그래서 남편은 종종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지쳐가는 아내의 표정을 볼 때면 더더욱.
다행히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가기 싫다 떼쓴 적이 없다. 함께하는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시간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조용하고 얌전한 성향을 가진 아이는 늘 같은 피드백을 받아 왔다.
'남이 하는 것을 구경할 때가 많고, 시킨다고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는 스스로 하곤 합니다.'
남들보다 특히 긴 탐색시간이 필요한 아이다. 눈치를 많이 보고, 못 하는 것을 들키기 싫어하고, 스스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 아이임을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돈 들여 등록한 엔터사에서 전달해 준 피드백은 못내 아쉬웠다.현실을 직시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속 깊이에선 끼가 많아 환영받는 아이이기를 기대했던 남편이었다. 본인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기대했던 아빠였다.
엔터사에 등록하면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한다. 앞서 낸 거금의 비용에 프로필 사진 촬영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사진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아이가 지레 겁먹고 긴장할까 걱정되어 찍지 않고 있었다.
3개월 간의 교육과정이 끝나갈 때쯤에서야 이제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늦게나마 부랴부랴 옷을 챙겨 지정된 스튜디오에 찾아갔다.
예상했던 대로 아이는 긴장감에 얼굴이 굳었다. 어떤 상황인지 몰라 엄마를 찾았고, 촬영 내내 엄마는 아이 옆에 붙어 있었다. 결국 사진작가님과 어시스턴스 선생님은 촬영이 어렵겠다며, 방법을 찾아달라 했다. 남편은 본인이 벌인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고, 탐색이 긴 우리집 작은인간에게 스튜디오 공간이 익숙해지길 바랐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고고다이노 유튜브를 보여주고, 아이의 사진이 찍힌 모니터를 보여주는 약 10여 분간의 시간 동안 남편은 물론이고 아이도 노력했다. 그 공간을 눈에 익히고, 좋아하는 만화를 보면서 마음을 다스린 아이는 2차 촬영부터 한껏 자연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굳어졌던 볼 마디가 풀어진 모습을 본 남편은 아이에게 고마웠고, 또 미안하기도 했다.
결국 우리집 작은인간은 본인의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렇게 건진 프로필 사진은 한동안 엔터사의 홈페이지에 떠있을 것이고, 어쩌면 누군가 캐스팅을 해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아이가 가장 이쁜 고슴도치 아빠는 현실을 부정하려는지 기대감을 지우기 못했다.어쩌면 억지로 붙잡는 희망일지도 모른다.
지인이 반대하고, 부모님이 반대하고, 아내마저도 반대한 엔터사 등록을 한 남편은 한동안 미안함이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독단적인 결단에 아내도, 아이도 힘들어했던 것이 아닐까 자책하는 시간도 가졌었다.
하지만 고슴도치 아빠의 현실부정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이때 아니면 못 해볼 경험이라고, 끼가 없는 집안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번이 우리 아이 평생에 있어 카메라 앞에서 뛰놀 수 있을 마지막 기회라고.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논리적 명분을 만들어낸 남편은 프로필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음을 우겼다.
그렇게 점차 남편은 현실을 부정하는 고슴도치가 되어가는 와중에 스스로는 현실을 자각하고 있다 착각하며 자기세뇌에 빠져든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