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한주제, 출근
눈 뜨고, 씻고, 옷을 입는데 일체의 머뭇거림이 없었어도 준비시간 30분이 순삭이다. 이제는 인이 베겨 시계도 보지 않고 준비과정을 거치며, 그대로 뛰어 나가면 딱 그 시간, 그 장소에 도착하고, 출퇴근길 발이 되어주는 141번 버스가 지나간다. 버스를 탈 때에는 해가 비치지 않는 방향의 좌석을 고르고, 앉아 곧바로 눈을 감는다. 매일 반복되는 나의 아침 루틴이다.
출근을 그리 싫어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가끔, 아니, 어쩌면 종종 골치아픈 일을 남겨두고 퇴근한 다음 날에는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기는 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특히나 그런 날의 시간은 이상하리만큼 빨리 간다. 발걸음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시계 바늘은 경쾌하게 뛰어다닌다. 똑같이 일어나서 씻고, 털고, 옷을 입고, 버스를 타러 갔지만 이미 버스가 떠났을 때, 그런 날은 주로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던 것 같다.
참 신기하다. 나의 루틴은 그대로인데,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았는데, 왜 시간은 더 빨리 갔을까.
출근길 시계바늘이 바삐 달리는 날은 또 있다.
이유도 없이 우리집 작은인간이 일찍 눈을 뜬 날, 아기는 '아빠, 아침이야~'하면서 앙증맞은 입으로 아기 말투를 뽑낸다. 그럴 때 하던 일을 하면서 대답만 해주었을 뿐인데도 출근 준비시간이 부족하다. 엘레베이터에 타 시계를 보면, '아이쿠, 뛰어야겠네..' 하고 뛰어가기를 여러 차례다. 단 한 순간도 하던 일을 멈춘 적이 없는데, 준비 과정에 추가된 것도 없는데, 그냥 '응~'하고 대답만 하는둥 마는둥 했을 뿐인데도 시간이 모자르다. 그런 날은 아이에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내 일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만 여운으로 남는다.
그렇게 뜀박질이 추가된 출근길을 겪은 날이면 하루 종일 피곤하다.
버스에 타자 마자 눈을 붙이고 쪽잠을 자야하지만, 뜀박질에 바삐 뛰는 심장은 쪽잠을 허락하지 않는다. 출근길 시계바늘을 초스피드로 돌려버린 하기 싫은 일, 혹은 무심코 무시했던 아기의 목소리는 마음을 헤쳐놓아 유난히 일이 잡히지 않는다. 피곤한 출근길이 되고, 업무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되는 것이다.
이런 내게 출근 시간의 퀄리티는 하루의 컨디션을 결정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출근 시간의 퀄리티는 시계바늘의 속도가 결정 짓는다.
시계바늘은 늘 같은 속도로 간다고? 그럴 리가 없다. 오늘 아침, 내가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