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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Sep 08. 2020

나는 왜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가

내 몸의 방향키는 어디에

안다. 갓 튀겨낸 도넛을 씹으면서 이 주제로 글을 쓴다는 건, 참 양심 없는 행동이다. 아까 도넛을 튀기면서 내 양심도 같이 튀겨냈는데, 도넛은 부풀고 양심은 쪼그라들었다지. 뭐 여하튼, 양심이 없는 상태에서 나에게 세 번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왜, 왜.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가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 예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굳이 사바랭에게 물을 필요도 없다.

아마도 나는 곱창과 치킨 그 중간 어디에 존재하는 사람.      




두 볼에 젖살을 잔뜩 머금고 있던 난,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았다. 이를 걱정한 부모님은 내게 7살 때 태권도를 시작으로 수많은 운동을 시키셨다. 태권도, 수영, 스쿼시, 재즈댄스, 검도 등등 운동이란 운동은 다 했다. 중학교 때는 일부러 산을 넘어 등교하기도 했었다. 온 가족이 나의 등교에 참여했으니. 가뜩이나 경사가 가파른 학교라 아이들은 매번 쉬는 시간마다 종아리 알을 뺀다며 다리를 주무르곤 했는데, 나는 그들의 행동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좀 가졌어야 했다.      


분명 부모님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텐데... 난 산을 넘어 다니다가 최고 몸무게를 갱신했다. 그 당시 학교 매점엔 대체 뭘로 만든 것인지도 알 수 없고, 알려주지도 않았던 정체불명 패티로 만든 햄버거를 판매했는데,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다. 매일 입이 즐겁게 1일 1 버거를 일삼다가 보니 어느 날 내가 모르는 내가 거울 속에 있었다.     


고등학교 때도 뭐 별다르지 않았다. 아침에 학교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선 조그마한 떡집을 지나야 했는데, 쇼케이스에 전시된 한입 크기의 오색의 경단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매일 경단을 한 팩씩 구매해 차가 밀리면 버스 안에서 남들 몰래 입안에 쏙쏙 집어넣는 것이 아침의 작은 행복이었다.   

   

행복의 결과는 뭐... 뻔했다.      


중학교 이후 거울 속에 내가 마음에 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나는 굳이 살을 빼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내가 싫지 않다는 거짓말 뒤에 숨어서.     




수능을 3달 남겨두고 삼수를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부모님을 설득해주겠다고 나선 언니는 두 분에게 약속했다.      


얘, 공부도 시키고 살도 빼게 할게
 

뭐?

단숨에 체결된 그들끼리의 계약. 구두계약도 계약이라며 언닌 나의 다이어트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난 놀란 토끼눈을 한 채 언니가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언니의 플랜은 심플했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 살던 언니는 내게 식권을 모두 넘겼다. 내가 아침에 오지 않으면 자신은 밥을 먹을 수 없다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싫은 나에겐 딱 맞는 계획이었다. 그날 이후 언니 학교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기숙사를 향해 난 다시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언니 기숙사에 도착하면, 식판 하나에 밥을 담아 둘이 나눠 먹었다.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언니는 날 위해 식단 조절을 함께 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저녁을 먹은 뒤엔 1시간가량을 걷고 난 후에야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달간 15kg를 감량한 후, 나는 거울 속에서 예전 어느 순간 잠깐 만났던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살이 빠지면서 수능점수는 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공부와 다이어트는 모두 순조로웠다. 하지만 수능을 한 달 남긴 시점에서 나는 불안해졌다. 운동을 하는 시간들이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래서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운동을 중단했고, 순식간의 나의 생체 리듬은 깨지기 시작했다. 근시안적인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작년 대비 점수는 올랐지만, 아마 끝까지 언니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으면 더 올랐을지도 모른다.    

  

오른 점수로 원했던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하지만 작년 대비 남아도는 점수를 가지고, 나는 낙방했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지막에 흐름이 깨졌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열심히 살았던 나의 2 달이었는데... 그 순간 15kg가 빠진 내 몸도 가치 없어져 버렸다. 처음엔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나의 노력이 별 볼일 없이 느껴졌다.     


그 후는 예상대로다. 난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대학도, 몸무게도.     


어느 날, 부모님 몰래 치킨을 사들고 들어왔던 날. 뜨거운 치킨의 열기를 얼굴에 쐬던 그때, 방문이 열렸다. 언니였다. 언니는 말없이 나를 바라만 봤다. 내게 한마디도 안 했지만, 난 그 시선에서 수많은 말을 읽어냈다. 난 한 손에 닭다리를 쥐고, 그녀에게 소리소리를 질렀다.      


이거 먹을 거야.
언니가 뭐라고 해도 먹을 거야!!!
 살이 빠진다고 인생이 달라져?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살이 빠졌다면, 다른 인생이 있었을 수도 있다.     




만약, 살이 빠졌다면,

매번 옷장 앞에서 한숨을 쉬었을 리도 없고, 옷을 구매할 때마다 사이즈를 고민했을 리도 없다. 소개팅이 들어왔을 때마다 거절했을 리도 없고, 20대에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좀 더 자신감 있게 했을 수도 있다.      


모든 건, 살 때문이라 생각했다. 살만 빠지면....


그런데 정말 살 때문이었을까?

살만 빠졌다면 다 할 수 있었을까?

정말 세상 사람들의 모든 자신감이 몸에서만 나오는 것이었을까?


솔직해지자, 살이 빠졌다는 건 결과론일 뿐이다.      


20대의 내가 나를 지독하게 싫어했던 건 나의 살 때문이 아닌, 나란 인간조차 제어를 못하는 스스로가 미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먹는 행복’이란 단어 뒤에 숨은 비겁 때문이었다. 난 정말 먹는 동안 행복했을까? 당장의 입의 즐거움을 취하며, 난 말하곤 했다. 살이 빠져야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안다. 살을 빼지않고 살아본 인생도 그닥 행복하진 않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나의 기준은 언제나 미래의 몸무게에 있었다. 그 몸무게가 되어야 자신감을 얻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관심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것처럼... 난 긴 시간 동안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유예시켜왔다.  


내가 유예시킨 나의 생은 어디로 갔을까.      




15kg를 감량했던 그때, 나의 삶은 심플했다. 식단은 조절했고, 운동은 하루도 빠짐없이 했고, 땀에 절어 요가매트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난, 내가 나를 컨트롤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고 이는 엄청난 활력이 되었었다. 그깟 작은 실패로 인해, 내가 쌓아온 나의 노력을 우습게 안 죗값을 10년간 받고 있는 중이다.


작년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서 삶의 질이 급격하게 낮아졌고, 아주 조금의 운동도 힘들어지는 시기가 왔었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극심한 통증을 이기며 조금씩 운동을 시작했다. 엄청나진 않지만 조금씩 운동량은 쌓여갔고, 조금이긴 하나 몸의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아주 조금의 변화일 뿐인데, 이 과정에서 그 옛날 어느 날, 스스로를 컨트롤하며 거울 속에서 웃고 있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아마 15kg까지 감량하긴 어려울 수도 있다. 분신과 같은 치킨과 곱창과 헤어질 수도 없겠지.

매번 다이어트에 실패하며 좌절하고, 나를 원망했지만 처음으로 생각한다.      


다이어트에 실패해도 괜찮다.

다이어트에 실패해도 괜찮다.

다이어트에 실패해도 괜찮다.


다만, 내 스스로가 내 몸에 대한 방향키를 쥐고 있다면. 더 이상 내 인생을 유예시키지 않을 수 있다면. 완벽하지 않은 나를 조금이라도 더 사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이번에 드디어 내 몸의 방향키를 잡은 나의 계획은 매우 심플하다.

심플하게. 계획은 무조건 심플한 것이 최고니까.


달콤한 도넛으로 입이 즐거웠으니, 이제 내 몸을 운전할 시간이다.

스쿼트 100개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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