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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Feb 22. 2024

9. 혼자하는 여행은 혼자만 하는게 아니었다.


도쿄행 버스가 내 앞으로 서서히 다가오자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영상도 찍어볼까? 핸드폰의 사진모드를 비디오모드로 바꾸려는 찰나, 버스가 이미 내 앞까지 도착을 해버렸다.


안 되겠다. 그냥 버스에나 빨리 타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사진 찍어줄게요!"


버스문이 열리면서 갑자기 누군가 나를 보며 영어로 말을 했다. 


설마 방금 나한테 말을 한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이 정류장에는 나만 서있었다.


누구지, 하고 보니 일본인 운전사분이셨다. 아마도 내가 버스 사진을 찍고 있는 걸 멀리서부터 본 것 같았다.


운전사분은 핸드폰을 자기한테 달라고 하더니 버스 앞에 서보라고 했다. 그리고 무릎까지 구부려가며 내 모습을 정성스럽게 몇 장 찍어주셨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그래도 도쿄행 버스 앞에서의 사진을 잘 건지고 싶어서 최대한 밝게 웃어보았다.


그분께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를 몇 번이나 외치며 버스에 올랐다.






그동안 도쿄행 버스를 여러 번 탔었지만 사진을 찍어준다고 한 운전사는 한 번도 없었다. 


정류장은 매번 긴 줄로 북적거렸다. 일본인 버스 기사분들이 다들 사무적이고 딱딱하게만 느껴졌고 굳이 운전사분들이 여행객들의 사진을 찍어줄 의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운전사분이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기대하지 않았던 친절에, 어리둥절했다. 






혼자 여행을 가면 내 사진을 찍는건 깔끔히 포기했었다. 


가끔 셀카를 찍어보기도 했지만  뒷배경이 잘 안 나와서 아쉽기만 했다.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건 왠지 민망했다. 


그런데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내 사진을, 그것도 도쿄행 버스 앞에서 찍어주다니! 






혼자 하는 여행은 혼자만 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로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던 친절을 받았을 때, 여행의 설렘은 배가 되었다. 



 

https://brunch.co.kr/@marimari/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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