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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북 Apr 15. 2024

식목일, 식물에 '입덕'하였습니다.

아픈 식물을 돌보는 일에 관하여

부스럭부스럭. 거실에서 남편이 움직이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아, 출근 준비를 하나보다. 모르는 척 다시 뒤척이며 잠에 취해 보았다.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하다가 늦게서야 잠에 들었기 때문일까 눈꺼풀이 너무도 무겁다.    

 

사실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식물들의 동지, 식집사다. 시작한 지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은 취미답게 식물만 바라보고, 물 주고, 삽목 할 가지를 자르고, 물꽂이를 해둔다. 그리고 그걸 매일 뽑아 뿌리가 났는지 확인한다. 특히 이번 주말에는 남편에게도 하루 종일 토양, 물, 분갈이, 뿌리 파리까지 이야기할 정도로 심취해 있었다. 밤에는 자려고 누워 식물 커뮤니티에 밀려있는 글들을 새벽까지 읽기 바빴다. 이제 막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나는 이렇게 많은 종류의 식물이,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음에 놀랄 뿐이었다.     


식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유혹은 계속 있어 왔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화분들을 키우시면서, 남편이 식물 씨앗으로 파종하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동생이 수경 재배를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흔들렸다. 한 가지에 꽂히면 한동안은 답이 없는 나임을 알기에, 특히 식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그토록 노력해 왔건만. 식물에 대한 사랑이 싹터버린 건, 한순간, 정말 딱 한순간이었다.     


남들은 아름다운 식물의 꽃을, 잎을, 특이한 모양을 바라보고 사랑에 빠진다는데 나의 시작은 약간 달랐다. 나는 며칠 전 남편의 잘못된 물 주기 후 죽어간 장미 베고니아를 보며 식집사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식물을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잘 키우는 식집사가 되기로 다짐한 것이다. 죽기 직전 살아남은 베고니아의 유일한 가지를 잘라 물꽂이 해두고 뿌리가 나길 기다리며 식물 커뮤니티에도 가입했다. (이제 내 것이 된) 베고니아의 상태를 질문하고, 다른 식물들에 대한 공부도 이어나갔다. ‘나’만의 식물로 제라늄을 조금 구입하기도 했다.(남편과 제라늄 돌봄을 공유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열흘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알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아니 아는 게 없는 식집사에 불과함이 슬펐다. 그래도 가장 중요하다는, 식물도 주변의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사랑의 거리 두기가 필요함을 배웠다. 그래서 조용히 바라본다. 분갈이한 레드판도라의 잎끝이 조금 노랗게 보이더라도 혼자서만 슬퍼하고, 힘을 내 꽃망울을 터뜨리려는 데니스를 속으로 조용히 응원한다. 한동안은 식물들의 모습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일희일비하겠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잡아내는 그런 집사로 거듭나도록 노력해야겠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더라도 내 식집사의 시작은 아픈 베고니아인 것을, 나는 잊지 않겠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식물들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돌보겠다고 그렇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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