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건 쟁취해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부자가 되면, 힘 있는 사람이 되면, 잘난 사람이 되면 행복은 자동으로 생긴다고 여겼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많이 노력했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모든 게 불만이었다. 집안 형편도, 성적도, 친구 관계도 모두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성격은 점점 뾰족해졌고 날이 섰다. 그리고 결국 나 스스로를 찔렀다.
아팠다. 상처를 감싸 쥐며 울었다. 하지만 다시 더 독하게 날을 갈았고, 반복되었다. 내 마음은 점차 너덜거리며 망가졌다.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점점 나 자신이 미워졌다. 벼랑 끝에서는 자살 충동만이 매일 같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매일, 어디에서건, 어떻게 죽을지만을 고민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봐 준, 내가 울거나 죽으려 할 때마다 곁에 있어준 한 사람이 있었다. 매일같이 운 티가 나지 않게 얼음으로 눈 찜질을 하는 나를 말없이 토닥여준 유일한 사람. 나조차 미워하는 나에게 매일 같이 쉬지 않고 예쁘다고 하는 사람. 일찍 태어났을 뿐인데 자신보다 많은 걸 안다고 언제나 추켜세워주는 사람. 바로 내 동생이었다. 내 곁엔 항상 끊임없이 사랑한다, 언니가 없인 살 수 없다고 말하며 같이 울어주는 동생이 있었다.
처음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오히려 매일 부정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듣는 내가 질려버린 후에도 동생은 멈추지 않고 같은 말을 하고 또 했다. 내가 우는 날에도, 유서를 숨겨놓을 곳을 알려주는 날에도, 그냥 거울로 못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짧은 순간에도.
몇 년이 흐른 후였다. 지겹게 똑같은 말을 듣던 내 머릿속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 건. 항상 부정하며 걸러 듣던 말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 온몸에 아프도록 소름이 돋았다. 나란 이 못난 존재가 정말 누군가에겐 사랑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가만히 있던 두 손이 떨렸다. 그리고 살아가도 된다는,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다시 한참을 울었다. 안도의 눈물이었다.
비록 지금 우울증에 불안 장애, 공황 장애까지 앓고 있지만 나는 최고로 행복하다고 자신한다.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게 가장 큰 나의 행복이다.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살아 있다. 따스해진 바람을 느끼면서, 아름다운 곡을 피아노로 더듬으며 연주하면서, 때론 이렇게 눈물을 짜내며 글도 쓰면서 또 행복한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