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기약하며 만나는 순간의 소중함에 대하여
비가 온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역시 타이밍이 좋지 않다. 필라테스 레슨이 끝나가고 마지막 이완 운동을 하고있는 즈음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산 없는데.’
빗방울이 유리창을 때리는 소리를 듣고 생각을 바꾸자마자 집중력이 확 풀려버렸다. 어영부영 마무리까지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 강사님이 남는 우산이라며 하나를 건네주셨다.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감사한 우산으로 막으며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역시 아쉬운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나는 요즘 끝이 보이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도 여행 중 선물용으로 구입해두었던 샌드를 들고 필라테스를 갔던 날이 시작이었다. 맛있는 선물을 받으면서도 강사님의 조금 곤란한 얼굴이 못내 신경쓰였다. (이때까지도 상황 파악을 못한 나는 다이어트 중이실 거라고 생각했다.)
“회원님은 운동 계속하실거죠? 계속 하셔야해요.”
운동 중 갑자기 나온 이야기에 잠시 당황했지만 당연히 계속 할 거라고 자신있게 대답한 나였다. 그럴 생각도 충분히 있었고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 강사님은 슬픈 표정으로 이 센터가 곧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안내해 주셨다.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한지 이제 3개월째. 낯가림이 심한 나는 이제서야 강사님과 제대로 인사할 수 있게 되었고, 기초 운동에서 살짝 벗어난 필라테스의 모양을 한 무언가를 시작했다. 그리고 센터의 폐업을 안내 받은 사람이 되었다. 수강생의 수가 적어 더이상 경영이 어려운게 원인이었다.
그러니 그 말을 들은 나는 원래 계약이 종료되는 3월 초에 필라테스 센터를 옮기거나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대로 3월에 그만두자니, 그동안 이용했던 기구와 운동 소품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익숙한 공간 하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울렁였다. 결국 마음을 다잡고 정말 문을 닫기 전까지 계속해서 다니겠다고 요청해 추가 결제까지 마쳤다.
강사님과 나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만나 하루하루 성실하게 운동한다. 내가 다른 곳에 가서도, 혹시 필라테스를 그만두더라도, 혼자서 열심히 운동을 이어 나갈 수 있길 같은 마음으로 바라면서. 떨려오는 근육에 힘을 주고 버티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호흡 조절을 위해 힘쓴다.
만날 때마다 끝을 알리는 미래가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에, 서로가 계속해서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 우리에게 나중이란 없으므로. 이제 남은 8회. 헤어짐을 알고 있는 만남은 더 안타까워서 이따금씩 슬픈 미소를 머금게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