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베프가 되었습니다.
최근 단둘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엄마와 베프가 되었다. 심심하면 연락하고, 시간을 맞춰 자주 만나며, 얼굴을 마주 보며 충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전에 하루 한 번쯤 안부 전화를 하는 사이였다면, 지금은 일주일에 많게는 세 번까지, 우리는 얼굴을 보고 데이트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사진 찍기는 최근 엄마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한 가지다. 카메라를 가지고 이것저것 찍고, 다시 컴퓨터에 옮겨 사진이 제대로 찍혔는지 하나하나 확인한다. 그러면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엄마의 눈이 좋지 않아 카메라로는 잘 찍혔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컴퓨터에서 사진을 하나하나 지우고 마음에 드는 사진만 추려서 외장 하드에 넣으면 엄마의 하루는 마무리가 된다.
사람을 찍을 때도 있고, 동식물을 찍을 때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엄마가 가장 잘 찍는 사진은 꽃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마음에 드는 꽃을 골라 몇 번이고 카메라를 조절해 찍고 나면 신기하게도 이후 아름다운 꽃 사진이 되곤 했다. 그런 사진을 건지고 나면 엄마는 노트북 앞에서 환하게 미소 지으며 날 부르곤 했다. “이것 좀 봐봐.” 하시면서.
덕분에 요즘 엄마와의 데이트 장소는 봄꽃이 많은 공원이다. 덕분에 사진 찍을 장소까지 운전하고, 원하는 사진들을 다 찍기까지 몇 시간씩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일방적인 데이트가 되었지만, 그 시간이 나에겐 귀하다. 여태까지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바쁘게 일하며 살아온 엄마가 찾아낸 드문 취미, 그 취미를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기쁨이 된다.
며칠 전엔 매화 사진을 찍고 있는 엄마 근처로 새가 한 마리 날아왔다. (배가 노랗기에 엄마에게 수컷 딱새 같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곤줄박이였다.) 새는 엄마 근처에서 꽤 머물렀고, 엄마는 꽃 사진을 찍던 카메라로 급하게 그 움직임을 몇 차례 찍을 기회를 얻었다. 집에 돌아와서 노트북으로 확인한 곤줄박이는 꽃눈과 함께 멋있게 찍혔고 우리는 사진이 예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렇게 엄마와 웃고 있을 때면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읽었던, 그러니까 '엄마와 내가 만약 같은 연도에 태어나 만난 친구 사이였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글이 갑자기 생각난다. 엄마와 나는 어땠을까. 함께 등하교하는 길에 피어나는 꽃들과 지저귀는 새와 푸르른 나무를 보고 좋아하는 엄마를 나는 미소 지으며 바라봤겠지. 함께 도시락을 먹고 수다 떨며 까르르 웃느라 바빴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으니까 나는 그 옆에서 놀자고 칭얼대고 있었으려나. 아니면, 어쩌면 나는 똑같이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며 살다가 이렇게 뒤늦게서야 친구의 소중함을 깨닫는 그런 나쁜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어도 착한 엄마는 언제나 내 옆을 묵묵히 지키며 나를 응원했겠지. 그 사실을 깨달으면 때로 내가 너무 미워서, 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