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가는 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by ㄱㄷㅇ

일이 늦게 끝나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일이 아닌 이상

택시를 타는 경우는 없었는데,

맨 정신으로 택시를 타는 게 참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큰 길가로 나와 택시를 잡는데

멀리서 빨간 조명의 빈차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손을 힘껏 뻗어 택시를 잡았다.

조수석에 앉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기사님은 예, 안녕하세요 하고 화답했다.

끼고 있던 이어폰을 잠시 빼고

흘러나오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라디오에선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는 디제이의 말과 함께

하루를 위로해 주는 노래가 나왔다.

기사님, 소리를 키워주실 수 있나요? 하고 물었다.

기사님은 아무 말 없이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창 밖에는 마천루가 빼곡하다.

뜨문뜨문

불이 들어오는 곳은 무얼 하는 곳일까, 하다가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기사님, 밤에 운전하시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하고 물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도 기사님에게 말을 거는 건 쉬웠다.

기사님은 희끗하게 웃었다.

피곤하지요. 그래도 밤에 하는 택시가 돈이 조금 더 됩니다. 하고 대답을 했다.

돈, 돈이 더 되면 괜찮겠네요. 다행입니다.

하고 돈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가난은 죄야.라고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소리를 쳤던 기억이 났다.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고,

사고 싶은 걸 사지 못 하는 생활이 싫었다.

그때는 어렸고, 주변을 보지 못해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인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되고 한 해씩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으나

그럼에도 기준은 항상 나였고,

나여야 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나는 여전히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고,

사고 싶은 걸 사지 못한다.

새벽까지 일하면서도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엄마, 엄마는 지금 자고 있으려나.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던 적이 언제였지,

내일은 낮에 전화를 해야겠다. 하고

핸드폰을 열어 지난 통화 기록을 살펴봤다.


라디오에서는 노래와 광고가 연달아 나왔다.

짧은 대화를 끝내고 눈을 감았다 뜨니 집 앞이었다.

조심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기사님은 수고했어요. 하고 나를 바라봤다.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기사님도 나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을까.


문을 열고 방에 들어오니 약간의 꿉꿉한 냄새가 났다.

신발을 벗기도 전에 선물로 받은 룸스프레이를 방안에 뿌렸다.

오랜 시간의 바깥 생활을 뒤로하고

돌아온 집에서 좋아하는 냄새가 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와 침대에 기대 누웠다.

씻어야 하는데. 씻고 잠을 자야 내일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수고했다는 말과,

요즘 사는 게 퍽 힘들어도

사는 게 기쁘다는 기사님의 말이

귀 언저리에서 다시 들려왔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는 게 힘든데,

기쁘지는 않네요. 하고 답하려던 말이

목 언저리에 맺혀있다.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은 대화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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