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봄바람이 불어오나 싶다가도 금세 차가워진 공기에 아직은 겨울이구나 싶다. 봄이 오려면 아직 한 뼘은 남았는데 마음속에서는 이미 바람이 살랑 불었다. 한때는 앞을 알 수 없어 글을 수단으로 삼아 미래를 그렸지만, 지난겨울의 글쓰기로부터 자리한 간지러운 기분은 나에게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부추겼다. 글을 읽고 쓰면서 당연하게 이어진 길이었다. 읽고 쓰는 삶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 깊이 사유하기 위해서, 나아가 타인에게 문학이 기능하는 효과를 알려주고 싶어, 학생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지난날의 나는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자유에 대한 욕망을 구석에 한 수저 정도는 품었다. 이따금 생기를 잃은 나의 눈이 향한 곳은 퇴직 신청란이 아니라 대학입시요강이었다. 지원자격과 해당 학과 소개를 훑어보았고 그 옆에 나를 두고 여러 가능성을 점쳐보았다. 배우고 싶은 것은 다양했고 여러 다른 입시요강은 핸드폰 저장공간에 쌓여갔다. 그리고 때가 온 것이다. 나의 전체적인 욕망을 관통하는 것, 하나의 행동으로 여러 소망을 이루거나 쉬워질 수 있는 그것은 문학을 배우는 것이다.
2. 일, 육아 그리고 배움
한 가정의 구성원이자 양육과 부양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엄마, 배우자로써 일과 가정 이외의 삶을 내 몫으로 챙기는 것이 욕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매 순간을 치열하게 더 나아지고 싶다는 여러 소망으로 보냈던 시간들의 끝에서 각자의 행복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시간과 자원(돈)은 한정적이다. 무한하지 않다. 나라는 사람이 하나로 고유한 듯 아이들의 엄마는 나 하나이다. 내가 챙기는 나만의 시간만큼 그들은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챙겨주지 못한 값이 예상보다 클 수도 있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엄마가 필요한 만큼 같이 시간을 보낼 그저 그런 엄마도 필요하다. 한번 더 안아주고 눈 맞추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은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영역이다. 그 어느 것보다 위에 있어야 한다. 단기적인 목표들에 가려져 저 멀리 지평선에 걸린 중요한 가치를 잊으면 안 된다. 삶의 가치들을 나열하고 균형을 저울질한다. 더하고 빼어보자. 어떻게 살 것인가?
3. 완벽한 계획
일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시간은 거의 7시가 되어간다. 하원을 담당하고 있는 남편이 아이들의 저녁식사를 챙겨준다. 그렇다면 나는 뒷정리라도 맡아야 하지 않을까? 시험 삼아 강의를 들으며 정리해 봤다. 생각보다 정리에도 열중할 수 있고 강의도 잘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금방 잠에 들 아이들을 생각하면 7시 반부터 8시 반까지는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집중육아의 시간으로 땅땅 정해둔다. 이 시간에 아이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에 더 귀 기울이고 잠에 들기 전에는 우유도 따라주고 책도 읽어주어야지 이불을 덮어주기 전까지는 그들에게 더 다가가야지. 아이들이 잠에 들고 나서는 뒷정리를 하며 30분~1시간 강의를 들어야겠다. 그리곤평일의 3일은 책을 읽으며 마무리하고 2일은 남편과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오붓하게 마무리해야겠다. 주말은 온전히 아이들의 시간이다. 일이 생기거나 출석수업이 있지 않는다면 말이다. 완벽한 계획이다.
24학번으로 방송대 국어국문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하게되었습니다. '직장인엄마학생' 이야기도 조금씩 적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