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코로나로 재택근무, 온라인 스쿨링,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이후로 좀처럼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 딸내미가 장을 보러 가자고 했다. 일주일 중 아이의 유일한 외출이 장보기이다 보니 흔쾌히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장바구니 가득 아이 간식과 끼닛거리를 사고, 다른 잡다한 물건 살 게 있나 해서 다른 가게도 여기저기 들러 보았다. 쇼핑을 마치고 아파트 주차장에 돌아와 미리 준비해 간 손수레를 꺼내 물건을 실었다. 건물 입구에서 앞서 가던 중년 여성이 뒤에 오는 우리를 두고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버렸다. 엘리베이터는 4층에 멈췄다가 다시 내려왔다. (전에 층간소음 문제로 경비실에 연락했을 때 경비 아저씨가 3층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옆집 문 앞에 놓인 반투명의 비닐봉지가 곁눈으로 보였다. 얼핏 봐서는 작은 기저귀 뭉쳐놓은 게 여러 개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옆집 여자가 전에 9월이 출산 예정일이라고 했던 생각이 났다. 지난 주말쯤에 복도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난 것 같은데, 내가 요새 하도 층간소음으로 시달리는 중이라 나가 보지 않았었다. 순간 '옆집 여자가 아기를 낳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문자를 보냈다:
How are you doing? It's your next door neighbor. I remember you mentioned that you are due sometime in September but don't know exactly when. How's everything going? I am just checking on you. Hope you are doing well.
장 봐 온 여러 가지 물건들을 냉장고와 팬트리 등으로 옮기고 정리를 마칠 때까지도 옆집에서 답문이 오지 않았다. 산책을 하러 나가면서, 봉투에 반쯤 차서 아직 못 버린 우리 집 쓰레기와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한 묶음을 들고나갔다. 손에는 비닐장갑도 꼈다. 그리고 옆집 문 앞에 가서 의문의 반 투명 봉지를 가까이서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용한 아기 기저귀였다. 우리 집 쓰레기봉투에 옆집 쓰레기를 담고, 옆집 문 앞에 가지고 간 20리터 쓰레기봉투 한 묶음을 두었다.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 옆집에 또 문자를 보냈다:
Congratulations! Your baby must be here! I took out the plastic bag full of soiled diapers by your door while taking our trash out this afternoon. I hope you don't mind it. I put the trash in the corner of the dumpster just in case you need to have the soiled diapers back for some reasons. Also, there's a bundle of new trash bags by your door for you to use later. Please let me know how you are doing.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사용한 아기 기저귀가 필요한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서 덤스터 구석에 두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필요하다고 할까 봐. 내일 아침이면 쓰레기 차가 와서 가지고 갈 텐데 그전에는 문자를 보겠지 싶어서 그냥 내다 버리기로 했다. 지금쯤이면 옆집 남자의 다리도 많이 나았을 텐데 그래도 둘이서 갓난아기 번갈아 가며 보려면 많이 피곤할 것이다. 쓰레기 봉지가 없으니 반투명 봉지에 넣어서 문 앞에 내놓은 것이고, 그렇다고 사용한 기저귀를 복도에 두는 것도 비위생적이라 남의 집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 결례(?)를 무릅쓰고 행동으로 강행했다.
산책을 하러 가는 길에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출산 후에 어떤 음식을 먹는지 검색해 보았더니,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출산 후 40일 동안을 La Cuarentena라고 하고, 그동안 산모는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고, 신생아 돌보는 데만 전념한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나쁜 기운이 못 들어오도록 창문을 다 닫아 둔다고 했다. 집 안에서 환기를 할 수 없으니, 사용한 기저귀를 복도에 두었나 보다 싶었다. 글을 읽으며 La Cuarentena가 한국의 삼칠일 (세이레) 문화와 거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산모가 먹는 음식은 야채 스프라고 나와 있는데 요리에 전혀 관심과 소질이 없는 나로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몇 달 전에 폰 대리점에서 내가 휴대폰을 개통하고 있을 때, 옆집에서 먹고 싶어 하던 피자를 찾지 못해 주문을 못 도와줬던 생각이 났다. 그전에 한 번도 나에게 뭘 부탁한 적이 없었고 그게 옆집에서 한 유일한 부탁이었다. 다시 그 피자라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하러 가는 길에 본죽 옆을 지나다가 거기서 야채죽을 사 갈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하필 오늘 옆집 아이가 태어난 걸 알게 되어 아쉽다. 옆집 사람들이 앞으로 두 달가량 한국에서 더 머물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갔으면 좋겠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본죽 가게에 전화를 해서 야채죽과 삼계죽을 주문했다. 한 이십 분 후에 가지러 오라는 말을 듣고, 또 피자헛에 치즈 피자와 가장 비슷한 피자 그리고 크림 파스타 배달 주문을 넣었다. 이것저것 시켰기 때문에 옆집과 우리 집 저녁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죽을 사서 집에 오는 길에 옆집 여자한테서 문자를 받았다:
Hello! We finally have our little one with us. He was born on September 14th. I had a few complications and we returned home the day before yesterday. Thank God. The baby is doing very well. Thank you always for looking out for us.
그래서 답장을 보냈다:
Sorry to hear about your complications. But I am glad that you and your baby are finally home. I ordered some food for you guys and would like to drop them off in 30 minutes or so. I will call you so I don't have to ring your door bell. Hope I don't wake your baby up. Welcome home!
집에 도착하니 피자가 이미 와 있었다. 딸에게 크림 파스타를 먹겠냐고 물었더니 안 먹는단다. 그래서 내가 먹을 삼계죽만 빼고 (사실 삼계죽이 산모에게 더 좋을 텐데 인삼 냄새 때문에 먹지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야채죽과 치즈 피자 그리고 크림 파스트를 들고 옆집에 갔다. 옆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아 초인종을 누를까 하는 찰나에 옆집 여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래서 "I am at your door!"라고 말했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몸 푼 지 얼마 안 된 옆집 여자였다.
나: Oh, you don't need to come out!
그러자 옆집 남자가 아기를 안고, 현관 가까이로 왔다. 나에게 아기를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것이다. La Cuarentena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만큼이나 예민한 라틴의 산후 풍습에 어긋나지 않도록, 산책하면서 먼지를 다 뒤집어쓴 더러운 몸으로 아기 옆에 가고 싶지 않았다.
옆집 여자: We are finally home now. Would you like to look at our baby?
나: (문 밖에 서서) Oh, how precious! Thank you but I just got back from walking and I am filthy. I will wait until your baby grows up a little bigger to meet him. I brought some food for you guys: Cheese pizza from Pizza Hut and a bowl of vegetable porridge. (크림 파스타가 있다는 말은 잊고 안 했다.)
옆집 여자: Thank you! How much do I owe you?
나: It's my treat! I wish I could cook for you but I am really bad at cooking.
옆집 여자: We really appreciate you! Thank you always for thinking of us.
집으로 돌아와 삼계죽을 먹었다. 죽에서 나는 인삼 냄새가 향긋했다.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더니, 컨테이너 밑에 적힌 글귀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