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쉬니 머리가 바쁘다
다이어트 시작한 지 8개월 후
48.9 오늘 아침의 숫자다. 지난 8개월 이상 나는 줄곧 아침에 숫자를 점검한다. 지난달 서울 여행을 가기 전에 가장 낮은 숫자는 48.6이었다. 그 이후로 나의 아침 숫자는 49와 50 사이를 바쁘게 왔다 갔다 했다. 이 숫자는 아마도 짐작했듯이 나의 무게다. 이 숫자에 이르기 위해 나는 살을 부지런히 깎아야 했다. 하루에 세 시간을 넘게 운동을 하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을 일일이 기록해야 했다. 게다가 매일 잠은 얼마나 오래 잤는지 물은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살피고 또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발이 반란을 일으켰다. 발바닥하고 무릎이야 늘 아파왔던 터라 무릎이 아프면 무릎 보호대를 하고, 발이 아프면 좀 더 편한 신발과 양말 등을 신으며 발의 상태를 살피곤 했다. 하지만 발가락이 아픈 이후로는 더 이상 오래 견디지 못했다. 발가락에서 시작된 통증은 무릎과 엉덩이 심지어 어깨까지 오갔고 의사는 운동을 삼가라는 말과 함께 진통제를 처방했다.
그러고 보름이 지났고 운동이라고는 자전거를 이틀 탄 것과 시내에서 집까지 걸어온 것이 전부다. 다행히 다이어트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라 체중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내 발이 정신없이 바빴을 때는 나는 모든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글 한자 적을 시간조차 없이 바빴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내 발이 멈추니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다시 나의 머리가 바빠진 것이다. 차라리 발이 바쁜 게 나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너무 많은 생각들에 사로잡히고 있다. 나는 행동하는 사람이고 싶다. 행동으로 뭔가 구체적인 것을 이루어내고 싶다.
그간의 부단한 노력으로 살이 빠진 이후 요즘 예쁜 원피스를 다시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몸매가 예쁘게 보이는 옷을 입고 싶은 게 아니라, 나의 예쁜 몸매를 제대로 보여주는 그런 옷을 입고 싶다. 딸에게 그 얘기를 하자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내 자신감이 극도로 지나침을 지적했다. 그래서 딸에게 말했다: "네가 지금 내 나이가 돼서 나처럼 좋은 몸매를 갖게 되면 그때 가서 나를 비웃어도 돼!" 딸은 나잇살이 뭔지 알리가 없다. 나이 들어 살 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리가 없다. 매일 아침 예쁜 옷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엄마를 보고 <나이 들어 왜 저럴까?> 싶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사람들이 우리 엄마의 외모를 칭찬하면 으쓱하고 좋았는데 고등학생인 우리 딸은 아닌가 보다. 아니면 예뻐진 엄마를 보고 속으로는 좋은지도 모르겠다.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머리보다 발이 바쁜 삶을 살아야 한다. 반란을 일으킨 내 발을 잘 달래 가며 매일 아니 이틀에 한 번이라도 운동을 지속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