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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10. 2023

콩나물 전쟁

누구의 승리인가?

새벽 배송 알림을 받고 출근 전에 물건을 꺼내서 냉장고에 넣으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프레시 백 두 개가 있었다. 첫 번째 가방에서  송장을 제거하고 물건을 꺼내고 같이 온 얼음도 꺼냈다. 두 번째 가방에서 송장을 제거하고 물건을 드는 순간, 포장지는 이미 찢어져 있었는지 아무 힘 없이 터졌고, 포장지 속의 내용물은 수류탄 파편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프레시 백과 현관문 앞은 콩나물로 뒤덮였다. 세상에! 황당하고 허망한 심정을 잠시 뒤로 하고 일단 반품 신청을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후 사건 진술과 함께 불량 내용물이 든 프레시 백을 빨리 수거해 가라고  고객센터 앱에 문자를 남겼다. 오전에 중요한 회의 도중에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받지 못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니 프레시 백 두 개 중에 하나만 수거가 되고, 정작 음식물 쓰레기가 든 가방은 수거되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황당함과 분노를 뒤로 하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서 사건 진술을 마쳤더니, 음식이 든 가방은 수거해 가지 않으니 자체 폐기해 달라고 했다. 계속 누르고 있던 분노가 밀려왔고, 나는 상품을 잘못 보낸 것도 모자라서 쓰레기를 고객에게 폐기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고 협조하지 않겠다는 나의 입장을 표명했다. 고객 상담 매뉴얼에 나와 있는지, 고객센터 상담사는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캐쉬 이천 원을 적립하겠다고 제안했고, 나는 그럼 자체 처분하겠다고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옆에서 이 소동을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거의) 다 큰 딸이 나에게, "방금 콩나물 설에서 엄마가 패배했다는 걸 알아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왜 그것이 패배라고 생각하는지 되물었고, 딸은 그 기업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푼돈 들여서 엄마한테 쓰레기 폐기를 하게 시켜서 일을 마무리지었기 (고객의 불만 전화를 종료시켰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딸이 말한 대로 나는 이 콩나물 전쟁에서 승리를 이루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기업이 제시한 이천 원은 나의 시급으로 보면 아주 적은 돈이고, 나는 이 시시한 콩나물 건을 해결하느라 그날 최소한 반 시간 가량은 허비했다. 이천 원이 음식물 처리 비용에 일조할 수는 있어도, 내가 입은 시간적 손해와, 나의 노동력과 감정적 손실을 보상하기에는 너무도 모자라는 금액이다.


하지만 나는 대기업을 상대로 고객에게 부적절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하며, 고객에게 부당한 노동력이나 시간적 손실을 강요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으로 미약한 승리를 이루었다고 자축하고 싶다. 지난번 포도와 마스크에 이어서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없는 물품이 하나 더 늘어났다. 팁도 잘 주고, 불우 이웃 성금도 기회날 때마다 하고, 사람들에게 평소 관대한 편이지만, 나는 콩나물 전쟁을 치르느라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했다. 있는지 없는지 표시도 나지 않는 단돈 이천 원을 아끼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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