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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Jul 17. 2021

나의 사모님 친구

#전업주부와 워킹맘의 미묘한 콤플렉스 이야기

10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


2000년 즈음, 고등학교 졸업 후 연락이 끊긴 한 친구를 10년 만에 만났다. 

친구는 우리 회사 모 대리와 결혼했는데, 남편을 통해 내 번호를 알았다고 했다.

회사 앞 카페에서 만났는데 정말 반가웠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나오고, 서울로 진학을 한 경우에는 

사실 연락하고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많지는 않다. 

그 해 마침 우리 고등학교의 수도권 대학 진학생이 많지 않아서 

모임이 제대로 활성화되지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대학 때는 그나마 먼 소문이라도 듣다가, 

졸업 후 회사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나니 거의 연락이 끊겨서, 

무심하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너무 반가운 목소리의 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그냥 안경 끼고 말없이 공부만 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고,

그 친구는 공부도 잘했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은 끼 많은 스타일이었다.

전공도 취미를 잘 살려 서울 소재 대학 의상학과에 진학하고, 

스타일리스트가 되었다는 소문까지는 들었던 바였다.


너무 반갑게 만나 한참 폭풍 수다를 나누고

자주 보자고 인사하며 아쉽게 헤어졌다.

하지만, 아이 둘 키우면서 바깥일까지 하던 당시 우리 처지에는

강제적인 단체의 압박 없이 그때그때 약속을 정해서 만나는 

둘만의 만남이 이어지기는 좀 어려웠다. 

정말 자주 만날 수 있을까 하고 막연히

긴가민가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그랬다.

예측은 빗나가지 않아서,, 

그 만남 이후로 또 15년이라는 시간이 훅하고 지나가 버렸다


다시 15년 후, 사모님으로 재회


그런데 2015년, 

중국 주재원으로 나가서 2년을 지냈을 무렵, 뜬금없는 소문이 돌았다.

나를 중국으로 끌었던 보스가 이제 한국으로 들어가고, 

새로운 보스가 북경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보스는 다름 아닌, 그 친구의 남편이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인사 발표가 나고, 

일주일 만에 그분이 덜컥 사무실에 나타났다.


처음 인사하던 날, 악수를 나누는데

“안녕하세요, 와이프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라고 웃는 게 아닌가.


“아, 예. 반갑습니다. 하하”

같이 웃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뭐지. 이 왠지 모를 찝찝함이란


이윽고 얼마 후, 드디어 그분의 가족이 다 이사를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서를 통해 사모님의 연락처를 알고, 한번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칙칙한 북경 거리, 화사한 하얀 스카프의 그녀


약속 장소에 정시에 나타난 그 친구는 여전히 눈에 확 띄는 스타일이었다.

동안에 세련된 패션.

양가집 사모님 다운 배려심으로, 면세점에서 산 우아한 선물까지 들고 있었다.


불편할까 걱정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자 이 낯선 외국 땅에서 동창을 만난 반가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침 내가 미리 와 생활하고 아이들 학교도 보냈던 경험이 있는지라,

해 줄 이야기도 많았다.


그 뒤로 자주 연락하고, 가끔 우리 집에서 와인도 마셨다.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 중국 학교, 중국 사람들 이야기, 

옛날 선생님들 이야기, 옛날 친구들 근황.

얘기하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였다.


호칭을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나는 장난기 섞어 마님이라고 불렀고,

친구는 외국식으로 그냥 내 이름만 불렀다.


가족밖에 없는 외로운 외국 생활에서,

그나마 공통의 과거가 있는 옛날 친구의 존재는 

서로에게 큰 의지가 되어 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먼저 주재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의 관계 재정립


내가 서울에 오고 1년 반 후, 

그 친구도 큰 아이 고등학교를 마치는 시점에 맞춰 귀국을 했다.

그 사이, 친구의 남편은 계속 더 높은 경영진으로 승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다시 회사 앞에서 몇 번을 만났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하게도 이제야 조금씩 불편함이 느껴졌다.

가장 큰 공통의 화제, 

이국 생활이라는 요소가 빠지자

평소의 일상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내가 회사 일, 새로 시작한 공부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는 “대단하다”라고 말했고,


그 친구가 여유 있는 시간을 활용해 시작한 취미 활동 이야기를 하면

나는 “부럽다”라고 말했다.


나는 나대로 혹시 무심결에 전업주부인 친구의 마음을 다치는 이야기가 아닌가 

자기 검열을 하며 조심스러웠고,

그 친구는 친구대로 혹시 여유로운 생활이나 남편 자랑을 하게 될까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왜, 워킹맘과 전업주부는 서로 간에 미묘한 콤플렉스를 갖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몇 번을 만나다가 

그 친구가 이사 및 인테리어, 아이 유학 준비로 바빠졌고,

마침 코로나가 창궐하기도 해서, 

연락이 뜸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생각해 보면 

졸업 후 25년 동안

서로 상당히 다른 생활의 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북경에서 마침 인연이 닿아서 외로운 때 좋은 위로를 받은 인연이니 

그냥 놓치기는 아깝다.


더 나이 들어서

서로의 상태에 대한 부러움이나 불편함이 사라지면

또 옛날이야기하면서 만날 때가 오겠지.


아쉽지만, 

지금 요 몇 년, 당분간만 격조하자고, 

친구야.
널 잊은 건 아니야, 너도 그렇지?



북경 거리에서 휘날리던 그녀의 멋진 스카프는 오피스 전투복밖에 모르는 나에게 또 하나의 콤플렉스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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