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귤 May 11. 2022

배가 불렀다는 말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같이 사셨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였던 할머니에게는 검약이 생활처럼 배어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편식은 절대 안 되고 자기 앞에 놓인 음식은 꼭 다 먹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당연했다. 


그러다보니 밥상머리 앞에서 좋아하는 반찬만 먹는다거나, 자기 몫의 밥을 남긴다거나 하면 꽤 심하게 혼이 났다. 꼭 그럴 때뿐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기 욕구의 남용이랄까, 직접적인 표출에 대해서는 '배가 불렀다'는 식의 야단이 따라왔다. 배가 고프면 자기 취향따라 이러쿵저러쿵 못할 게 뻔한데 배가 부르니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왜 그게 나쁜지는 구체적으로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이것저것 따지면 당연한 덕목인 근검절약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었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알러지도 많거니와 아이들의 취향이나 예민한 정도를 존중해서 예전처럼 억지로 꾸역꾸역 다 먹도록 강요하지는 않는 분위기 같다. 나도 집에서 아이의 식사를 마련할 때 야채도 골고루 먹어야 한다, 낯선 음식도 한 입 정도는 시도해 보고 안 먹는다고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김치 같은 특정한 반찬을 억지로 먹게 하거나 억지로 자기 밥공기를 다 비우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이 개념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을 위해 물건을 아껴쓰자는 개념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보다는 네가 감히! 라는 감정이 깔려 있는 개념이라는 느낌이다. 이 차이를 느끼게 된 계기는 약간 엉뚱하지만 포켓몬 카드다. 


우리 집 7세 어린이는 요즘 유치원 친구들과 함께 포켓몬 카드 수집에 푹 빠져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카드면 뭐가 나와도 좋아하더니 점점 그 카드 시스템에 내재하는 등급을 알게 된 모양이다. 반짝이가 들어간 카드가 좋고, 그 중에서도 카드 전체가 반짝이면 더 좋다. 반짝이들 안에서도 다이맥스며 거다이맥스 같은 이름이 붙은 포켓몬들을 구분하고 숫자의 크기로 그 안에서 다시 세부적인 위계를 나눈다. 물론 거다이맥스 같은 이름이 붙은 데 더해 숫자가 큰 카드가 더 구하기 어렵고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이런 카드가 들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최신 버전의 포켓몬 카드는 품귀 현상이 심각해서 프리미엄이 붙어 팔린다. 그런데 나는 이 카드팩을 굳이 프리미엄까지 주면서 사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장난감에 어른들이 붙어서 제 욕심 차리는 판에 어지간하면 흥을 돋궈주고 싶지 않았다. 오천원짜리 팩 하나를 만오천원에 판매하는데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카드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정가로 판매하는 자판기가 곳곳에 있는데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한 대가 있다는 것이다. 거기로 몇 번 다니다 보니 대강 언제쯤 직원이 와서 카드를 채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드디어 (심지어 프리미엄을 붙여 되팔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눈치 싸움을 하며) 가장 인기 있는 팩을 몇 개 구입했다. 


문제는 그 중 한 팩을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주었을 때 일어났다. 팩에서는 아이가 원하던 거다이맥스 포켓몬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기쁘지 않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이보다 더 숫자가 큰 거다이맥스가 나오길 바랬다는 것이다. 그 때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공들여 사온 수고를 아이가 몰라줬다는 서운함도 아마 있었을 텐데, 아이가 있는 것에 먼저 기뻐하기를 바랬지만 그보다는 없는 것에 서러워하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원하는 대로 척척 구해주고 척척 사주니까 어지간히 좋은 게 나와도 최고로 좋은 게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이건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 이제 당분간 사주지 말아야하겠네. 여러 생각이 차례차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 이게 바로 그 배가 불렀다, 라고 꾸중하는 마음이구나. 다음 순간 갑자기 옛날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꾸지람을 들을 때 미묘하게 까끌거렸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아낄 줄 알아야지, 감사할 줄 알아야지, 하고 가르치는 마음에는 굳이 배가 고프거나 부르거나 상관이 없어야 한다. 늘 배가 부른 사람도 아낄 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로 끝을 내야지, 배가 맨날 고프다가 어째 배가 불러지게 됐다고, 혹은 남들은 배가 고픈데 너 혼자 배가 부르다고 다른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식의 사족은 쓸데없는 비교만 계속하게 만들 뿐인데, 네가 감히, 하는 마음이 약간은 담겨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편치 않게 다가왔던 것 아닐까? 


배가 불렀다는 말은 사실 흔하게 듣고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표현인데 포켓몬 카드 덕분에 한참 과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튼 비교는 빼는 것이 옳겠다. 음식은 옛날 일 남의 일 꺼낼 것 없이 그냥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껴 먹는 것이고, 어린이는 이제 포켓몬 카드는 충분히 가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그것은 계란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