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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귤 Jun 19. 2022

바로 그 팬케잌을 위한 탐색 (1)

평일 아침은 시리얼에 과일 정도로 간단하게 때우지만 주말이 되면 뭔가 그럴싸한 아침 메뉴를 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럴싸한 아침 메뉴라고 하면 어쩐지 핫케잌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이것 또한 어렸을 때부터 입력된 결과일 것 같다. 집에서 직접 구워낼 수 있는 제빵 믹스의 시조새 같은 존재가 바로 핫케잌 믹스 아니겠냔 말이다. 가루에 우유와 계란 정도를 붓고 휘저어서 프라이팬에 구워내기만 하면 따끈따끈한 빵이 나온다니 처음 등장했을 때는 핫케잌 믹스도 참으로 혁신적인 발명품이었을 것 같다. 


더해서 뛰어난 마케팅의 소산인 것 같기도 하다. 차곡차곡 탑처럼 쌓인 핫케잌 꼭대기에 네모나게 자른 버터 조각이 턱 자리를 잡고 그 아래로 가느다란 폭포 줄기처럼 시럽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핫케잌의 이데아로 굳어져 있다. 


아무튼 그런 멋진 핫케잌을 구워내려면 의외로 스킬이 필요하다. 달리 말하면 사실 그럴싸하게 따끈따끈한 빵 이상의 핫케잌을 만들어 내기가 사실 쉽지는 않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느냐 식용유를 두르느냐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고, 제대로 폭신한 핫케잌을 구우려면 약불에 오랜 시간을 들여 구워내야 하는데 이게 참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한 장 구워서 세 식구가 나눠 먹고 나면 다음 장이 나올 때까지 어린이용 만화 한 편 정도는 볼 수 있을 정도다. 이걸 어떻게 아느냐. 실제로 오늘 우리 세 식구가 핫케잌을 두 장 구워 먹는 사이 우리 집 어린이가 넷플릭스로 '개비의 매직 하우스' 한 편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한 편이 20분 조금 넘는 길이인데 그 정도는 시간을 투자해서 노릇노릇 고루 잘 구워진 핫케잌이 탄생한다. 


이렇게 제대로 굽기가 어려운 음식은 밖에서 먹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되면 외식 메뉴로 핫케잌을 선택할 때가 많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다른 나라에서도 꽤 여러 번 도전해 보았는데, 사실 이거다 싶은 멋진 핫케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일일이 머랭을 쳐서 손가락 두 마디 정도는 될 만한 두께로 부풀린 핫케잌도, 신선한 버터밀크를 잔뜩 넣어서 구워낸 핫케잌도 사실 나쁘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훌륭하지 않았다. 


이런 실망을 거듭하다 보니 사실 핫케잌의 이데아는 이렇게 그럭저럭 맛없지도 대단히 훌륭하지도 않은 단 맛 나는 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만일 그렇다면 미국의 핫케잌 체인점인 IHOP이야말로 핫케잌 세계의 명예의 전당 같은 곳처럼 느껴진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직한 첫 회사는 어느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였다. 처음 면접을 볼 때 출장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뭔가 좋아 보였지만 얼마 안 되는 직원이 일하는 작은 지사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일일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허드렛일을 한다는 묘사가 실상에 더 가까웠다. 직급도 말단이니 출장비도 빠듯해서 비행기 좌석도 호텔도 검소한 선에서 선택해야 했다. 


첫 번째 출장도 당연히 그런 선상에서 출발했다. 이코노미 좌석에서 오래 시달리며 긴 비행을 한 끝에 미국 어느 도시에 도착해 겨우 공항을 빠져나오니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였으므로 알타비스타라든가 야후 같은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길찾기 서비스를 이용해 출력해 간 지도를 보아 가며 열심히 운전해 호텔에 도착하고 보니 한밤중이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나니 엄청 배가 고팠다. 


첫 출장이라고 사수가 동행해 준 덕분에 외로운 것은 덜했었다. 하지만 사수 역시 상사 역할이 처음이다 보니 여러 모로 어설펐다. 둘 다 지치고 배가 고팠지만 어딜 가서 뭘 먹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렌트카를 몰고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니 IHOP 이라고 쓴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24시간 영업하는 팬케잌 전문점이었다. 


더 돌아다닐 기력이 없어서 일단 차를 세우고 들어가 보니 레스토랑 안은 거의 비어 있었다. 나와 사수만큼 피곤한 표정의 서버가 테이블로 안내하고 메뉴를 주고 갔다. 그전에 미국에 와본 적은 있었지만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24시간 정도 짧게 체류했던 정도였으니 첫 방문이나 마찬가지였고, 처음 와본 레스토랑이었다. 모든 것이 낯선 게 당연했지만 팬케잌이 뭔지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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