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어떻게 지킬 것인가. - 말의 힘.
나는 어려서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믿거나 말거나.
유치원 시절에는 노란띠 때, 태권도장에서 다른 도장생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해서 마치 지 띠색깔 같은 지도를 새하얀 도복에 그리고는 다시는 태권도장에 가지 못했다. 그 트라우마 때문일까? 군대에서도 2년 2개월 동안 1단은 커녕 1품 실력도 안됐고, 결국 병장이 되어서야 억지로 그 해에 있었던 마지막 부대 심사에서 겨우 통과하고 간신히 진급 누락을 면했었다.
지금에 와서 도대체 나 새기는 왜그랬을까? 곰곰히 새벽에 일어나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면, 누군가 그렇게 해야한다고 말하면, 다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몰랐던 멍청돋는 녀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부모님 슬하에 중학교까지 보냈고,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모든 선생님이 나를 알았고, 나는 그 분들께 부모님 욕을 먹이면 안된다는 약간 본능적인 강박이 있었고, 시험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온 동네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곤 했다.
아주 많은 이들이 동시에 여럿이 기대하거나 기원하면 이루어진다
고 했던가. 꽤 학업 성적으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뤘었다고 지금도 자부할 수 있다.
모두의 기대속에 드디어 꽤 성공적인 진학을 했고, 난생 처음 집근처를 떠나 서울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새학기의 스케쥴은 까까머리 꼬맹이에게 조금 버거웠다. 새벽 5시50분에 스쿨버스에 첫번째 학생으로 오르면, 7시반 쯤 학교 앞에 내려서 0교시부터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0교시는 기본적으로 자장가로 들렸다. 그리고 한학기, 거짓말을 조금 보탠다면 1년 내내 푹 잤다. 자고, 먹고, 자고, 먹고, 놀다, 자다 집에 간다고 해야하나.
그야말로 학교에 숙박비를 낸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학교에서는 내내 자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깨우다 지쳐 부모님을 호출하셔서는 애가 어디 아픈 것 같으니 병원에 데려가 보는 것이 어떻냐고 말씀하셨고, 어머니는 그 날로 나를 중학교때 수족냉증을 치료해 줬던 동네 좀 친다는 한의원으로 데려가 한약을 먹이셨다.
그러나 나의 수면장애는 그다지 나아지질 않았지만, 1년 후에는 10cm 큰 중꼬맹이가 되었고 별명은 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쯤부터 듣던 소리가 있는데,
'그래도 연고대는 가겠지.'
라는 말이었다.
정말로 고등학교 3년 내내 그런 소릴 들었다. 그 땐 내 주위에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1학년 때, 자다가 짤린 종합반 담임 선생님도, 종친이었던 담임 선생님도 그러셨다고 한다.(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수학을 가르치셨다.) 옆자리에서 같이 취침생활을 즐겼던 수형이와도, 지하철에서 떠들어서 민폐끼치던 계동파 친구들도 모두 그 얘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는 많이 고대에서 다시 만났고, 또 고연전에서 많이 만났다. 물론 만족하지 못하고 성공한 친구들은 관악구에도 가고, 대전에도 가고, 포항에도 갔다. 이제는 전 세계에 널리널리 퍼져있다. 나도 최근에는 얼마전까지 가산에 있다가 이제는 태어난 곳이자 고등학교 근처인 장한평에서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전하고 싶었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게 하는 힘은 '말의 힘' 이다.
내가 입으로 뱉으나, 머리로 생각하나, 들으나 상관없다.
그러나 공기의 진동으로 실체화된 말의 힘은 더 강하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에너지는 당연히 더 강해진다.
그렇게 그 이야기는 현실화 된다.
나쁜 말과 부정적인 비난을 들을 시간은 없다.
나와의 약속을 모두에게 선포하기도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명환 씨가 매일하는 확언명령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