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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Mar 26. 2024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

2024 오픈 종료, 그리고

숨쉬기 운동만 해도 비 온 뒤 잔디처럼 근육이 쑥쑥 자랐으면 좋겠다.

떡볶이와 초콜릿만 먹어도 살이 쏙쏙 빠졌으면 좋겠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

MBTI에서 극 N의 상상이란 보통 이런 것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이론을 따른다면, 세계는 나의 표상이고 세계를 인식하는 ‘나’가 있어야 이 세계도 존재할 수 있다면, 세계의 중심인 내 소망에 맞추어 세계의 법칙이 알아서 움직여줘야 하는 거 아닌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고 싶다.     


궁극의 꿈…


나는 크로스핏이 좋다. 오랜 기간 운동으로 크로스핏만 했다. 크로스핏은 다양한 운동 동작의 집결체다. 달리기와 로잉 머신과 같은 유산소, 클린과 스내치 등의 역도, 철봉과 맨몸으로 하는 체조 동작이 전부 포함된다. 이름부터가 교차하고 엇갈림cross이다. 세상 모든 운동 동작이 크로스핏 안에서 교차한다. 유산소와 역도와 체조를 전부 한다. 해야 한다.      


내가 크로스핏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도였다. 역도를 통해 무거운 것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효율적인 방법을 배운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이 나를 관통했다. 고도로 응집된 해방감이었다. 클린 앤 저크clean&jerk(용상), 스내치snatch(인상), 클린과 스내치를 잘하기 위해 해야 하는 각종 스쿼트와 데드리프트와 줄줄이 이어지는 각종 보조운동들, 바벨로 하는 동작은 다 좋았다.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니까 더 좋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작은 스러스터thruster로 크로스핏에서 역도 동작을 응용해 만든 것이다. 어깨 위로 바벨을 올려두는 클린 자세에서 프런트 스쿼트 자세로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머리 위로 바벨을 들어 올리는 이 동작은 완벽한 전신 운동이자 근력과 유산소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크로스핏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동작이라고 나는 쓰겠다.      


눈 감고도 한다(아님)


그렇게 올해 오픈 마지막 와드를 확인하고 스러스터가 나와서 기뻤다. 스러스터야말로 크로스핏의 근본이다! 바로 아래 체스트 투 바chest to bar동작과 바 머슬업muscleup동작을 보고 슬펐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동작이 철봉에서 수행하는 것들이다. 풀업(턱걸이), 체투바(가슴까지 턱걸이), 머슬업(바 위로 올라가기), 다 싫다. 가장 좋아하는 동작과 가장 극혐하는 동작을 함께 해야 하는 와드가 나와 버렸다.      


오픈 와드가 발표된 이상, 해야 한다. 바벨을 들어, 앉았다 일어서서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그렇게 10개를 한 뒤 철봉으로 가서 내 몸을 최대한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 스러스터 10개 한 번에 해치우는 데 30초가 안 걸린다. 체투바 10개를 한 개씩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하기 싫어도 한 개씩 천천히라도 해야 와드가 끝이 난다.      


마지막 오픈와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동작만 할 수는 없다. 크로스핏의 궁극적인 목적이 신체의 다양한 능력을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도도 체조도 유산소도 어떤 운동이 와드로 출제되든 모두 다 고루 잘할 줄 알아야 한다. 철봉이 싫어도 매달려야 한다. 버텨야 한다. 후들거리는 두 팔과 뻐근한 등 뒤 통증을 견뎌야 한다. 버티고 견디는 시간이 쌓인다. 보조 도구 없이 맨몸으로 턱걸이 한 개가 된다. 한 개는 두 개, 세 개, 열 개가 된다. 턱까지 간신히 오던 바bar가 쇄골에, 가슴에 온다. 철봉 매달리기 0초대의 학생은 열심히 버텨가며 철봉 바를 명치까지 댈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순 없다.

주 3회 이상 운동을 해야 근육이 자라고 심장이 튼튼해진다.

탄수화물과 단백질과 지방과 기타 영양소를 맞춘 식사를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적당히 사람들 틈에 섞여 출퇴근을 해야 한다.

공익광고 문구 같은 당연한 이 말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한다.


싫어하는 것을 견딜 줄 알아야 강해진다.


매달리기도 안 되던 두 팔로 철봉을 부여잡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받아들이며 하루를 버틴다. 그것이 삶이다.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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