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이 소개해 준 역도의 즐거움
왜 크로스핏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도파민 발산하는 재미있는 운동이어서, 극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파이팅 외치며 운동하고 싶어서, 운동으로 칭찬받은 경험이 처음이어서, 많이 먹어도 몸이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다양한 답이 있고 최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크로스핏을 통해 역도를 알게 되었는데 역도가 좋아요.
올해 파리올림픽이 열렸고 개최 기간에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서귀포의 펜션에서 마농치킨을 먹으면서 박혜정 선수가 역도 81kg급에서 첫 올림픽 메달을 따는 순간을 관전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의 역도 경기를 지켜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미래의 내가 역기를 만져보게 되리란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거대한 파도가 대지를 밀어 올리듯 세계 신기록을 들어 올리는 장미란 선수를 경이롭게 바라보기에만 바빴다.
역도 중계 해설의 말이 귀에 들어온다. 우리나라가 역도라고 부르면서 이름에 ‘도道’ 자를 쓴다고, 역도는 힘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수양의 뜻이 들어 있는 이름이라고. 역도가 사람을 매혹시키는 지점 중 하나가 이 운동이 ‘힘’을 다루는 원초적인 종목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몸무게의 몇 배가 넘는 무게를 들어 올리는 힘을 효율적으로 다스리는 훈련, 두 팔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역기를 들기 위해 몸의 모든 부분을 종합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힘을 쓸 수 있어야 성공한다.
크로스핏 박스에서 처음 바벨을 마주하고 클린 앤 저크clean&jerk(용상)를 배울 때 당황했다.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리고 서서 두 손을 내리고 바벨을 잡는다, 바벨을 잡는데 팔에서 힘을 빼야 한다, 젓가락으로 국 떠먹으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팔에서 힘을 빼지 않으면 바벨을 팔로 당기기 때문에 나중에 무게가 무거워지면 위로 들어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팔로 안 들면 무엇으로 이 무게를 들어 올리죠? 하체를 써야 한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큰 힘을 끌어낼 수 있는 하체의 힘을 통해 바닥에서 올라오는 바벨을 순간적으로 쇄골 높이까지(용상), 혹은 단숨에 머리 위까지(인상) 들어 올릴 수 있다. 여기에 바벨을 끌어 당겨놓는 등의 개입이나 어깨, 복압 잡기, 다리 힘쓰기, 엉덩이 들어가는 타이밍... 등은 제가 역도 전문 코치는 아니기에 자세하고 정확하게 서술할 수 없는 점 양해 바랍니다.
한 줄 요약을 하자면, 역도는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운동이다.
역도를 통해 배운다. 내가 가진 힘을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어떤 부분에서 힘을 빼고 언제 힘을 쓰고 몸을 펴는 타이밍을 맞추는 방법을, 몸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힘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운다. 몸을 발견하는 과정을 넘어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힘을 깨닫는 과정은 경이롭다. 내가 내 몸무게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온전히 내 힘으로! 역도를 배우는 영상 속 내 표정은 아이가 첫 걸음마를 뗐을 때 표정과 결이 비슷하다.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자아의 재발견이 주는 기쁨에 가득 찬 표정. 큰 힘에는 큰 기쁨이 따른다.
힘을 잘 쓰는 방법은 어렵고 까다롭다. 역도를 배우면서 보기만 했을 때 ‘바닥에 있는 역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동작 수행을 위해 머리를 계속 써야 한다. 머리를 쓰되 생각이 너무 많아지면 실패한다. 팔에 힘을 빼야지! 의식한 순간 힘이 들어가 바벨이 몸에 붙지 않고 앞으로 돌아가 버리고 여기가 몸이 들어갈 타이밍이다! 생각하다 어긋나 바벨을 받지 못하고 떨어뜨린다. 생각하면서 생각하지 말기, 힘 빼면서 힘주기, 이걸 익히는 과정이 역도고 역도는 몸과 정신을 동시에 수양하는 ‘도’의 운동이 맞다.
내게 없는 것이라 생각한 ‘힘’을 발견하고 단련하기. 기쁨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도파민을 찾아 전 세계를 방랑하고 집에 돌아온 주인공이 먼지투성이 거울 앞에 서서 찾아낸 것은 몸 안에 있던 빛이다. 닦아낼수록 선명하게 빛나는 것, 너는 이 세계를 들어 올릴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의 빛, 훈련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 기쁨은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