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운동으로서의 크로스핏에 대하여
무슨 운동을 하는지 묻는 게 자연스러워진 요즘, 나는 크로스핏을 한다고, 5년 이상 꾸준히 해 왔다고 답하면 아래 세 가지 질문 중 하나가 반드시 추가된다.
크로스핏이 무슨 운동이에요?
그거 엄청 힘든 운동 아니에요?
크로스핏 그거 완전 인싸 운동이라던데?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소모되고 집에서 가능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확신의 MBTI에서 ‘I’(Introverted)’형 인간의 대표 취미활동이 크로스핏이라니,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는 크로스핏을 오랜 기간 지속해 온 내향형 인간이라니,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크로스핏은 하고 싶어?
사실 크로스핏은 첫사랑에 가깝다. 이제 더 이상 운동을 미룰 수 없다고 박차고 나간 내 눈앞에 가장 먼저 등장한 종목이 크로스핏이었고, 하루 한 달 두 달 해 보니 재미있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각종 크로스핏 장비와 크로스핏 레벨 원(코치 자격증)이 들려 있었다. 알에서 깨고 나와 처음 본 상대를 엄마로 여기는 병아리와 같이 ‘운동 싫어!’의 벽을 깨고 처음으로 마주했던 운동이 크로스핏이었을 뿐, 그렇게 겁 없이 사랑에 빠졌을 뿐.
내향형과 외향형 인간을 나누는 기준 중 하나로 나 이외의 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에너지가 소모되는가 아니면 충전이 되는가, 로 판단할 수 있다 한다. 명백히 전자인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스핏 박스에 가서 다른 회원들과 만나 함께 운동을 할 때만큼은 오히려 힘이 차오른다. 물론 충전된 힘은 오늘의 와드로 남김없이 소진된다. 와드가 끝나면 너도 나도 모두 바닥에 드러누워 오늘 운동 소감을 공유하면서 다시 에너지를 채운다. 다른 회원과 팀을 이뤄 함께 와드를 수행해야 하는 날도 있다. 같이 운동할 파트너와 머리를 맞대고 와드 격파 전략을 짜고 서로를 응원한다. 내가 먼저 와드를 끝내게 되면 아직 운동 중인 회원을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남은 개수를 세어 주고 함께 운동 장비를 정리한다.
가장 많이 하는 대화 주제는 ‘오늘 와드가 얼마나 힘든지에 관한 경험론적 고찰’로 빨개진 얼굴과 온몸에 흐르는 땀의 양을 비교하며 즐거워한다. 아직 와드를 수행하지 않은 뒷 타임 회원들을 붙잡고 오늘 운동이야말로 지옥행 급행열차에 승차하는 것임을 설득하는 데 열을 올린다. 수다로 충전된 에너지는 나머지 운동에 아낌없이 다시 사용된다. 와드는 보통 한 타임에 한 시간이고 운동을 한 사람과 할 사람과 하고 또 운동하는 사람과 운동하고 수다를 떨어야 하는 사람들이 겹겹이 쌓여 아무도 집에 가지 않는다. 그 사이에 극 I형 내가 책갈피처럼 끼워져 있다.
왜 크로스핏 박스 안에서는 기간 한정 E인간이 되는지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과 함께 운동하고, 같이 고생하고, 고생한 공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앞으로 운동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계획을 함께 세운다. 함께한다는 경험이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를 북돋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하고 나의 힘듦에 너도 공감한다는 것, 우리가 서로 통했다는 인식의 순간이 주는 짜릿함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걸 너도 같이 좋아한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공유할수록 커진다.
내 안에만 갇혀 있던 나의 마음이 벽을 깨고 너에게 다가간 순간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 크로스핏이 내게 두 개의 심장을 선물했다. 운동을 통해 튼튼해진 심장과, 벽을 깨고 기꺼이 너를 향해 달려가는 심장. 나는 달라진 내가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