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직업 예술인

예술활동증명과 직업으로서의 예술인

by JiwooRan

작년 이맘때 한참 육아에 치여 틈틈이 첫 장편소설 초고를 쓰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일'이 맞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 일이 내게 경제적 보상과 정신적 성취를 보장하는가? 후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여 혼란스러운 나를 다독이며 간신히 소설을 완성했다. 언제 어떻게 빛을 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안 풀리면 일단 카페로


아이가 돌을 지나 맨밥도 먹을 줄 알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게 되면서 어린이집에 언제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지금 보내도 될까? 좀 더 데리고 있을까? 어차피 주변에 괜찮은 국공립 어린이집들은 이미 꽉 차 있었고 서류상으로 백수인 엄마의 첫째 아들은 입소대기 3순위였다. 대기 순번이 1번부터 3번까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기나긴 입소대기 증빙서류 안내를 읽다 처음 보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예술인-예술인활동증명서' 내가 직업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면 맞벌이로 인정되고 입소대기 순번이 1번으로 단숨에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어디서 내가 '예술인'인지 인정해 주지? 예술인경력정보시스템https://www.kawfartist.kr/에서, 어떻게? 공개 발표된 예술활동 증거물을 제출해서 증명되면 끝. 문학의 경우 출판이나 발표된 작품과 계약서 등을 첨부해 신청할 수 있었다.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2년 전 출간된 내 단편소설의 표지와 판권, 당시 작성한 계약서를 스캔하여 업로드했다.


한 달 만에 온 문자


예술활동증명 완료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아이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막 잠이 든 참이었다. 문자를 본 뒤 나는 한참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 엄마는 진짜 예술인이야, 중얼거리다 '진짜'가 거슬려 미간을 찌푸렸다. 예술에 진짜가 있으면 가짜는 뭐란 말인가, 작품을 하나도 완성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예술인이라 부르기만 하는 사람? 예술인이라는 단어도 어쩐지 어색했다.


무슨 일을 하시나요?

아, 저는 예술인인데...

너무 가짜 같잖아!


예술인이라고 하면, 특히 소설가의 클리셰 같은 이미지라면 잭 니콜슨이 연기한 <샤이닝> 속 소설가 잭이 떠오른다. 소설을 쓰기 위해 떠나 온 폐쇄된 호텔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아내에게 히스테리를 부려가며 몇 날 며칠 타자기로 두드린 작품은 똑같은 문장을 반복한 것이었던 광기 어린 모습의 소설가. 밤새 술을 마시며 아무것도 쓰지 못하다가 번뜩이는 영감을 잡아채어 식음을 전폐하고 불멸의 작품을 완성하는 모습이 쉽게 상상된다.


햇빛 아래 예술인과 예술인의 아들(ㅋㅋ)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 밥과 기저귀를 챙기고 놀아 주다 낮잠과 밤잠에 든 사이에 매일 한 장의 글을 쓴다. 상상 속의 예술인으로서의 소설가와는 좀 이질적인 모습이다. 예술인보다 생활인의 향기가 짙은 이미지 속에서,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확실하게 아는 건, 내가 완성한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사실이야. 나는 쓴다는 일을 했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으니, 직업으로서의 예술인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왜 소설가가 예술가가 아니어서는 안 되는가. 대체 누가 언제 그런 것을 정했는가. 아무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소설을 쓰면 됩니다. 우선 '딱히 예술가가 아니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집니다. 소설가란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나 좋을 대로 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자유인의 정의입니다. 예술가가 되어서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부자유한 격식을 차리는 것보다 극히 평범한,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자유인이면 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어찌 되었든 나는 무엇인가를 만들었고, 완성했고,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잠든 아이의 침대 안으로 모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모기장을 정돈한 뒤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 간단히 저녁을 먹고 노트북을 펼쳐 쓰다 만 두 번째 장편 소설을 이어서 쓴다. 하루에 a4 1장, 200자 원고지로 열 장 정도 써 온 소설이 지금 100장이 넘어가고 거의 1000매가 쌓였다. 그동안 비틀거리며 두세 발짝 겨우 걷던 아이는 자유자재로 뛰어다니고, 손으로 숟가락을 뺏어 들고 혼자 밥을 떠먹으려 시도하고, 자주 읽어 준 동화책의 의성어를 어설프게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를 돌보았고, 육아에 완성이란 불가능하겠지만, 꽤 괜찮은 육아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아 종횡무진 뛰어다니고 방황하고 싸우고 술을 마시고 끝없는 대화를 나눈다. 아이는 아직 자기 자신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 자체로 숨을 쉬고 먹고 배출하며 '존재한다'. 결말을 앞둔 소설의 다음 장을 내일의 작업으로 넘겨 두고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그림책을 본다. 내 손을 끌어당겨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책의 그림을 가리키며 방긋 웃는 순간 나는 예술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술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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