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제1기 마감
많은 작가들이 창작의 원동력으로 마감을 언급한다. 나는 마감이 없다. 내게 마감 기한을 주는 이는 없다, 아직까지는. 매일 반드시 해야 할 작업량을 정했다. 하루에 몰스킨 노트 한 장, A4로 치면 반 장 조금 넘는 분량을 채울 것, 오늘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분량을 채우기를 우선할 것, 그리고 매일 일기를 쓸 것, 단 한 줄이라도.
도무지 쓸 말이 없는 날은 육아가 쉬웠다. 갓 태어난 아기는 먹고 싸고 자고 자그마한 아기 침대 안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타이니 모빌 음악을 배경 삼아 도대체 소설 속 주인공이 왜 겨우 헤어진 전남친을 다시 만나러 가는 건지 그 의도를 파악하려 머리를 싸맸다. 인간이란 먹고 자고 싸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자꾸만 어디로 튀어나가 한바탕 싸우고 와서는 씩씩대며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어줘야 한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곧 뛰어다니면서 소설 쓰기가 되려 위안이 되어 주었다. 적어도 내 인물은 종이 밖으로 튀어나와 내 만년필을 입에 넣지 않으니까. 화장실에 간 사이 책상 위 만년필을 낚아채 새까만 입술로 씩 웃는 아이를 보며 기겁하기를 반복해서 경험한 뒤로 글쓰기는 다소 안전한 일이라고 여기게 됐다. 그렇게 안심하는 작가인 내 소설에 불만을 가진 주인공이 만년필을 통로로 삼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육아와 함께 하는 소설 쓰기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고 이렇게 숨 쉬듯이 소설을 뱉어낼 수밖에 없다.
주네처럼, 사르트르 역시 삶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보다 강력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쓰는 일이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작가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우발성에 예술적 필연성을 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 사라 베이크웰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이 책은 약 2년 간 세상의 우발성에 예술적 필연성을 부여하고자 분투한 기록이다. 스스로에게 부과한 마감을 지키기 위해 아기띠를 하고 아이를 재우며 스마트폰으로 썼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곁눈질하며 피아노로 '왕벌의 비행'연주하듯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드리며 썼다. 다시 읽고 수정하고 다듬을 여유는 없었다. 발행을 누르면 그날의 마감은 끝이다. 오늘 하루도 '필연적'이었어, 다행이야. 안심하며 맥주 캔을 깠다.
육아 에세이이자 창작 일기인 이 글은 둘 모두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지도 모른다. 이토록 애매한 정체성의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도 내 글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아무도 내게 이 글을 쓰라 권유하거나 청탁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필요해 썼다. 적어도 이 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위안과 내가 하는 일이 일말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남기고픈 마음으로.
지금 이 후기를 남기는 2021년 가을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고 아주 오랜만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아이가 내 책을 빼앗아 도망치는 걸 잡으러 다니지 않아도, 내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와 머리를 박고 우는 걸 달래지 않고도 집중할 수 있다. 육아 제2기의 시작이다.
육아 1기의 시간 동안 쓴 두 편의 장편소설 원고는 책이 되지 못했고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다. 돈이 되지 못한 나의 작업은 창작지원금에 의존해 간신히 버텨야 하는 상황이지만, 벌써 세 번째 장편소설을 쓰는 중이다. 써야 할 이야기가 너무 많다. 아무도 내게 소설을 쓰라고 하지 않았지만 내가 나에게 쓰라고 명령한다. 너는 써야 살아지는 인간이야. 만년필로 노트 위에 쓰인 소설은 오래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