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아이 밥을 만들고 정리한 뒤 침대에 누운 시간이 새벽 2시였다. 아이는 7시에 어김없이 기상했고 같이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했다. 아침마다 먹는 우유가 똑 떨어졌고 대신 사과와 오트밀을 먹였다. 매일 아침 패턴이 어긋난 탓인지 오늘따라 보채는 강도가 두 단계 더 높았다. 피곤한 나는 아이가 낮잠에 들면 같이 자려고 했고 11시-12시 사이에 반드시 잠들던 아이는 4시에 잤다.
재우려는 나와 버티는 아이가 함께 보낸 4시간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었다. 잠에 취했지만 안 자려는 아이는 온 집안을 뒤집어 놓으며 잠투정을 했고 그 뒤를 따라가며 수습하는 나는 뒤집어지는 속을 최대한 억눌렀다. 화가 나지만 화를 표현하면 안 돼, 내가 화를 내면 아이는 울음을 터뜨릴 것이고 폭탄은 터져버리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될 것이다. 버텨야 한다.
버티고 버텨 4시에 끝장을 본 잠든 아이를 뒤이어 퇴근한 남편에게 토스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너무나 자고 싶었지만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줄 서서 먹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자주 가는 서점에서 책을 사서 단골 카페로 향했다. 맥주를 홀짝이며 무심히 읽어나가다 잠시 멈췄다.
침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내 무능력의 핵심에는 교활한 자기혐오가 있을 거라고 늘 의심해왔지만, 나는 그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다. 나보다 용감한 마르쿠스는 그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며 말한다. "너는 너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자신을 연민하려다가, 몇 페이지 뒤에서 다시 공격에 나선다. "이런 끔찍한 불평불만과 원숭이 같은 삶은 이걸로 충분하다..... 너는 오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그러는 대신 내일을 택한다." 마르쿠스는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남겨두었다가 자신의 이기심에 내리꽂는다.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불 아래 남아 있는 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다.
-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6쪽
이 책이 최근 한껏 쌓인 스트레스의 가장 예민한 지점을 정확히 찔렀다. 아침 시간, 침대 밖으로 나가는 시간,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기상 시간에 대한 스트레스. 약 20년 전에 '아침형 인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대유행할 때 고등학생이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학교에 가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라떼는 0교시가 있었단 말이다...) 결코 내 의지로 정해진 기상 시간은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 저녁형 인간이었다. 좋아하는 만화나 드라마를 보다 밤을 새우고 다들 잠든 시간에 기나긴 일기를 썼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출간된 날 새벽 아버지가 내 방문을 열다 초롱초롱한 내 눈과 마주치고 기겁하시며 물었다. "아직도 안 잤어?" 그날 나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결말과 함께 해가 뜨는 광경을 바라보며 감격했다. ‘이게 인생이지....’
내 의지가 아닌 아침 기상은 괴롭다.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났고, 일을 할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자고 있으면 아이가 자신의 범퍼 침대에서 넘어와 새벽에 잠든 내 몸을 톡톡 두드린다. 나는 지금 10시간의 풀 수면으로 에너지 풀 충전하고 그만큼 길어진 공복으로 배가 고프다! 그러니까 엄마는 어서 일어나 우유를 주고 꽉 찬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림책을 읽어 주세요! 네다섯 시간 자다 깬 나는 겨우겨우 일어난다. 내가 원하지 않는 아침 시간을 내어 준 대가로 받는 것은 성적표나 돈이 아닌 따끈따끈한 모닝 똥 기저귀다.
비자발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되었지만 이 아침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이제 아이는 내가 책상에 앉는 시늉만 해도 잽싸게 달려와 바지를 잡아당긴다. 식탁에 앉아 밥만 먹어도 내 한쪽 다리를 잡고 칭얼댄다. 내 바지를 붙잡지 않고 조용하다 싶으면 조용히 사고 치는 중이라는 신호다. 책 한 줄 읽다가도 불길한 느낌에 달려가 보면 99%는 촉 적중.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은 하루 두 번, 아이가 잠들 때, 낮잠과 밤잠 시간. 이 시간을 최대한 길게 누리기 위해 내가 잠드는 시간은 늦어지고, 늦게 자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스트레스받은 상태에서 억지로 기상하고..... 쓰고 보니 악순환의 고리가 여기에 있었군.
내가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과 내 시간을 갖고 싶다는 강박 속에서 아침 기상은 점점 괴로운 의무로 변질되어가고 있었다. '너는 오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그러는 대신 내일을 택한다.' 저녁형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부정해 온 것들은 사실 단순한 게으름일 뿐일지 모르겠다. 지금 당장 일어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을 미루고 미루다 저녁에 급히 해치우거나 내일로 미루는 삶을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혼자만의 시간에 집착하다 아침의 시간을 잃어 갔다. 무심히 지나갈 일도 피곤을 핑계로 날카롭게 대응했다. 속이 뒤집어진 서랍은 다시 정리하면 되고 어질러진 집은 치우면 될 일이다. 두 돌도 안 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은 내게 달려 있고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 아이를 책임질 사명이 있다. 함께 써야 할 시간이라면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사실 밤을 새워야 글이 잘 써진다고 오래 믿어 왔지만, 최근 완성한 두 편의 장편소설은 모두 아이가 태어난 뒤 낮잠 시간에 쓴 것이다. 고요한 오전 시간에.
이러한 깨달음이 마르쿠스를 움직이게 한다. 마르쿠스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이 있다. '사명'이지 '의무'가 아니다. 두 개는 서로 다르다. 사명은 내부에서, 의무는 외부에서 온다. 사명감에서 나온 행동은 자신과 타인을 드높이기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의무감에서 나온 행동은 부정적인 결과에서 스스로를, 오로지 스스로만을 보호하려는 행동이다.
마르쿠스는 이러한 차이를 알았지만, 늘 그렇듯 스스로에게 그 차이를 다시 상기시켰다. "새벽에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 한다.'" 스토아학파나 황제, 심지어 로마인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 같은 책, 같은 페이지
제국을 다스린 황제도 아침마다 괴로워하며 일어나시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잠깐 뒤척이는 순간이 있지, '더 자고 싶다..... 하지만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 한다.' 오늘 나는 새로운 아기 반찬을 만들어야 하고, 다 떨어져 가는 기저귀를 주문하고, 당근으로 새로운 장난감을 구해 보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일주일에 한 편씩 브런치 글을 쓰고, 다음 소설을 구상해야 한다. 나의 발전과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룰 순 없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을 위해 사명감을 품고 눈을 뜨니 아이가 나를 보며 활짝 웃고 있었다. 새로운 하루가 온전히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