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라는 일, 소설 쓰기라는 일
열흘 넘게 육아일기를 거의 쓰지 않았다. 베이비타임 어플로 매일의 아이 상태를 짧게 기록하고 SNS에 아이 사진을 올리는 활동을 제외하고 개인적인 일기도 쓰지 않았다. 현실 육아에 쓰고 남은 에너지와 집중력을 전부 집필 중인 장편소설에 몰아넣었다.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찌어찌 결말까지 안착한 이야기는 활주로에 착륙한 비행기처럼 안전하다. 200자 원고지 기준 600매가 좀 넘는 소설을 전부 프린트에 빠르게 훑어본다. 소설 시간대가 엇갈리고 인물 설정이 뒤죽박죽이다. 앞에서 3년 전 사건이 뒤에서 1년 전이라 말하지 않나, 주인공 어머니가 운영하는 슈퍼는 뒤에서 반찬 가게로 바뀌어 있고 엉망이다. 초고를 두 번 쓴 시간만큼 고쳐 써야 할 퇴고의 시간이 왔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건 손에 딱 맞는 만년필과 무한정 공급되는 종이(나는 1차 초고를 손으로 쓴다), 그리고 시간이다. 아이가 오전과 오후 두 번의 낮잠에 빠져들면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조용히 내 책상 앞에 앉았다. 하루 A4 한 장은 반드시 채우기 위해 분투했다. 그리 많은 작업량은 아니지만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쪽쪽이로 달래는 데 실패하면 그마저도 채우는 데 실패한다. 한 시간에서 최대 두 시간의 낮잠 시간은 규칙적이지만 정확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아이가 잠들어도 안심할 수 없다. 안방 침대에 내 두 귀를 놓아두고 쫓기듯 책상에 앉아 허겁지겁 썼다.
아이가 클수록 육아의 난이도 역시 함께 큰다. 역류방지쿠션이나 바운서에 눕혀 놓으면 얌전히 잘 있던 아이는 이제 비탈길의 통나무처럼 뒤집기와 되집기 연결 신공으로 눈 깜박할 사이에 거실 끝에서 끝으로 굴러다닌다. 이유식을 시작하고는 할 일이 몇 배로 늘었다. 내가 만든 이유식을 단호히 거부한 아이 덕분에(?) 직접 만드는 수고는 줄었지만, 배달된 이유식 데워서 식혀서 아이를 의자에 앉혀 턱받이를 하고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 먹이는 쌀미음은 턱 아래로 줄줄 흐르고 미음 범벅인 턱받이를 손으로 잡아 얼굴을 문지르고 얼굴과 온몸에 묻은 이유식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트림시키고 먹은 게 거의 없는 식사를 보충하기 위해 분유를 주고 온 거실이 빨랫감과 설거지할 이유식 그릇과 젖병으로 난장판이고 이유식은 이게 겨우 시작이라는 무서운 사실.
육아는 일이다. 소설 쓰기는 일인가? 가끔 '무슨 일 하세요?' 질문을 받으면 몹시 부끄러운 표정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글 쓰는 일을 하는데요...' 답하곤 했다. 책을 냈지만 등단했다고 말하기 애매한 내 글쓰기가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진짜 일이란 무엇인지 궁금해 사전을 찾아봤다.
일 :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쓰는 활동. 또는 그 활동의 대상.(표준국어대사전)
사전적으로 무엇을 이루기 위해 머리를 쓰는 활동이라는 의미로는 글쓰기가 일이 맞지만, 대가를 받는 측면에서 내 소설은 일이 아니다. 아직까지 내 글은 경제적 가치를 갖지 못하니까. 아이를 낳기 전엔 시간제 강사나 기간제 교사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글을 썼다. 운 좋게 책이 나왔고 세상은 내 책의 존재 이전과 이후의 세계로 갈라졌지만, 삶은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이름 없는 소설가로 남아 있었다.
고뇌하는 내 앞에 ‘쓸데없는 일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잔소리하는 나이 든 여자가 튀어나왔다.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도 전혀 닮지 않은 그녀는 작년 광화문에 나갔다가 우연히 휘말린 태극기 집회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행진하던 여자들처럼 생겼다.
새까맣게 염색한 머리에 선캡을 쓰고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등산복에 커다란 등산 가방엔 태극기가 잔뜩 꽂혀 있다. 그녀는 내 머릿속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쩡쩡 울리는 큰 목소리로 쉼 없이 말을 한다. 요즘 젊은것들은 지만 알고 이기적이라 애도 안 낳으려 들고 낳으면 돈도 안 벌고 집에 처박혀서 놀기만 해, 이런 애들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그녀가 주장하는 완벽한 여자란 아이 셋을 자연분만으로 쑥쑥 낳고 돌까지 모유수유로 셋 모두 잘 키우면서 남편과 아이들의 의식주를 책임지고 돈까지 벌어오는 사람이란다. 그녀는 내 반박은 들은 척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한다. 그러니까 돈 안 되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든 취직을 하든 당장 일하러 나가라고.
그녀가 태극기를 휘두르며 내 눈 앞에서 퍼레이드를 여는 날엔 내 글을 불태워 없애버리고 싶다. 돈을 벌어라! 돈 되는 일을 해라! 인물들은 평면적이고, 주제는 뻔하고, 아무도 읽지 않을 평범한 소설은 돈이 되지 않는다! 나는 재능이 없나?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관망하며 그녀는 배낭에서 땅콩을 꺼내 먹기 시작한다. 오랜 노동으로 부르트고 갈라진 손과 굽은 등, 온갖 염증과 통증을 달고 사는 그녀의 몸은 그녀가 지나 온 시간을 증명한다. 여성의 독립된 자아를 인정하지 않던 과거가 그녀의 세계관을 땅콩만 한 크기로 깎아내렸고 그녀에겐 아이를 낳고 돈을 버는 것만이 유일한 존재 가치를 입증하는 방법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세계관 바깥의 존재인 것이다.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 세상은 땅콩만 하지 않고 무수한 세계들이 존재하며 글쓰기도 어엿한 ‘일’이라는 사실을. 아이 턱에 흐르는 이유식을 수건으로 닦으며 머릿속으로 주인공의 결정적인 한 마디를 고심한 결과물이 이것이다. 납작한 삶이라 체념하며 살아가던 주인공이 삶의 부피를 처음으로 만끽하는 순간 내 심장도 같이 뛰었고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기띠를 한 채로 펜을 쥐고 휘갈겼다. 무심한 표정의 그녀 앞에서 신나게 타자를 치고 프린트를 하고 수정하고 또 프린트한 내 작업물을 자랑한다. 이 소설은 내가 반년 가까운 시간을 생각 없이 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잠든 아이 옆에 앉아 내가 쓴 글을 천천히 읽는다. 어설프고 연약하지만 이건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야. 글쓰기는 지금의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육아도 글쓰기도 누가 내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지만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나의 아들, 유일무이한 나의 소설.
그녀가 오독오독 땅콩 씹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고쳐쓰기를 시작한다. 아이가 낮잠에서 깨기 전까지, 뒤집기 하고 되집기하며 이 일에서 저 일로 넘어갈 준비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