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라는 나라를 향해

by JiwooRan

나는 글쓰기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나를 파헤치는 글쓰기.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낯선 나를 여행하는 글쓰기.

글쓰기를 통한 자아의 수렴과 자아의 발산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전자에 관심을 갖고 글을, 그중에서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


내 첫 소설집 서문은 페소아로 시작된다. 자기 자신을 여러 개의 이름으로 나누었던 사람.


나의 첫 소설집을 읽은 절친은 내게 말했다.

“다 다른 단편인데, 모두 다 한 명 같아.”

친구의 말대로, 나는 소설을 통해 나 자신을 여러 개로 쪼개어 이 이야기 저 세계로 보내고는 관찰했다. 나라는 한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자아를 낯설게 하기로 바라보며 그 과정을 소설로 완성했다. 외부보다 내면을 파고드는 글쓰기. 임신 전까지 쓴 작품을 묶은 첫 소설집의 주제는 온전히 ‘나’였다.


타인이라는 나라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온도와 습도의 기후대와 문화를 품은 다른 나라 같아서,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흥미로운 경험을 준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행어에도 진실이 아주 없지 않지만, 내 생각에 타인만 한 토털 엔터테인먼트도 없다. 자기만의 세계관, 음악 취향, 관심사와 말솜씨, 표정과 몸짓, 신념과 상상력, 농담의 방식... 이런 요소들은 그 사람 고유의 분위기와 매력을 형성한다. 물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여행자의 예의를 품을 때, 내가 갖지 못한 아름다움을 목격할 수 있을 거다. - 김하나+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조리원 퇴소 후, 생후 20일 된 아기가 자는 틈틈이 출산 전 주문했던 책들을 하나씩 읽고 있다. 오늘 고른 책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전통적인 가족 구성을 탈피한 두 여성의 동거 이야기. 30대를 앞두고 삶의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내가 생각했던 선택지는 두 개였다. 이 사람과 결혼하거나, 평생 혼자 살거나. 결혼하지 않으면 독신이겠지 했던 내게 동거는 생각지 못한 삶의 방식이었고 흥미롭게 읽혔다.


이런 책과 같이 그때의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을 읽을 때면 바닥만 파 들어가던 나의 자아는 틀을 깨고 밖으로 확장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낯선 삶이 궁금해진다.


잠깐의 평화


위의 인용문을 빌려 표현하자면, 나라는 인간은 한 번 마음에 든 여행지가 있으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그곳만 가는 타입인 것이다. 좁다란 사교의 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소수의 친구들만 만나며 새로운 인연 만들기를 피곤해하는 성격.


소심한 타인 여행자는 이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여행지로 떠나게 되었다. 구체적인 여행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앞으로의 여정이 가늠되지 않는, 내 아이라는 나라로.


아이라는 나라로


생후 20일 된 아기는 자기 세계관은 고사하고 주변 세계 인지는 가능한지 궁금한 존재다. 아기는 먹고, 자고, 싸고, 우는 일로 하루를 보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사이 아이는 30분에 걸쳐 자다 깨며 모유를 섭취했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황금빛 똥을 싸고 세면대에서 엉덩이를 씻기는 내 손바닥에 한 덩어리를 더 주셨다... 너는 내게 똥을 줬어..... 뭘 먹으며 이 글을 읽는 중이라면 죄송합니다.


아무튼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아기의 세계는 생존이 우선이기에 그 크기가 너무 작아 입국이 불가능하다. 옹알이도 하지 못하는 아이의 유일한 언어는 울음소리뿐. 부모가 된 우리는 아이가 왜 우는지 해석하려 애쓰며 잘 먹고 자고 숨을 잘 쉬는지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다 보낸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거니?


하루 한두 번,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두 눈을 또렷하게 뜨고 허공이나 우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때가 있다. 아직 초점이 잡히지 않는 아이의 검은 동공은 오래된 우물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어둡다. 저 안에 이 아이의 세계가 숨어 있다. 아이의 눈동자를 통해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잠깐 엿본다.


내게서 비롯되었으나 내가 아닌 나의 아이. 나의 분신도 아니지만 완벽한 타인도 아닌 존재.


제3의 나라, 새로운 글쓰기의 세계가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