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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즌졍 Jan 15. 2020

퇴사했지만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

[Essay] 9시면 잠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암튼

직전에 다니던 회사는 자율 출퇴근을 하던 회사였다. 그래서 나는 일찍 출근해서 일찍 퇴근하는 삶을 선택했다. 지하철에서, 엉덩이 옆에 딱 붙어 옴짝달싹 못하는 내 손과 달리, 유유자적 내 어깨 위에서 핸드폰 하는 그들의 손이 부럽기 때문도 있고. 마치 학교를 조퇴하고 집에 갈 때처럼, 모두가 일하고 있는데 난 집에 간다는 고소한 기분 때문도 있고. 새벽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섰을 때 예기치 못하게 마주하는 보라색, 혹은 분홍색, 혹은 손대면 톡 하고 델 것만 같은 강렬한 주황색으로 물든, 노을과 분간되지 않는 하늘을 보는 기분도 꽤나 짜릿했다.


마치 학교를 조퇴하고 집에 갈 때처럼, 모두가 일하고 있는데 난 집에 간다는 고소한 기분 때문도 있고.


이젠 더 이상 회사를 갈 필요가 없지만, 난 여전히 새벽 5시면 벌떡 일어난다. 진짜 벌떡. 아이폰의 알람 소리를 피아노 연주로 바꿔보아라. 몇 년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굳이 딱히 뭐라 꼬집어 말할 명확한 이유는 사실 없다. 이미 몸이 익숙해져 버린 것도 있고, 언젠가부터 다들 잠들어 있는, 밤인지 새벽인지 알 수 없는 그 깜깜한 시간이 주는 고요함이 좋아져버렸나 보다. 그리고 진짜 이젠 한 네시 반만 되면 깬다. 깨서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이불에 온 몸을 부비적거린다.


아이폰의 알람 소리를 피아노 연주로 바꿔보아라.


나의 하루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눠지는데. 백수인 주제에 뭔 파트냐 싶을 수도 있지만 암튼. 제일 처음은 일어나서부터 운동을 가기 전 혹은 하기 전까지의 이른 아침 시간이다. 이때 나는 무려 한 시간 반 정도를 모닝 페이지 쓰고, 밥 먹고, 강아지 산책시키고, 씻는데 쓴다. 근데도 부족하다. 내가 문제인 건지... 음... 내가 문제인 건지.... 문제인 건지.


그러고 나서는 세 시간 정도 집중해서 무언갈 한다. 영어 공부, 코딩 공부, 투자 공부가 원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조금 유연하게 써보려고 하고 있다. 너무 유연해져서 뭘 했는지 모를 때가 많은 것 같기도 하지만. 쩝.


나 별로 굼뜨거나 느리지 않은데. 왜 이렇게 쓰잘 떼기 없는데 시간을 많이 쓰는 거지...


두 번째 파트는 운동인데. 월수금은 클라이밍을 하러 간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써먹는데, 자전거 타고 하러 가는데 삼십 분. 가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클라이밍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데 한 삼십 분. 집에 오자마자 밥을 먹고 샤워하는데. 이러면 세 시간 반이 후딱 간다. 특히 집에 돌아와서 밥 먹고 씻는데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아씨... 진짜 내가 문제인가 보다. 나 별로 굼뜨거나 느리지 않은데. 왜 이렇게 쓰잘 떼기 없는데 시간을 많이 쓰는 거지...


그러고 나면 이제 오후 집중 타임이다. 후... 근데 사실 아직까지도 이 부분은 쉽지가 않다. 생각보다 오후에 루즈해지기 너무너무 쉽다. 회사 다닐 때처럼 하루에 8시간만 집중해서 공부를 하던, 일을 하던 해보자고 하고 있는데, 침대를 바라보며 집중하기 정말 넘나 어렵다. 파이팅이 불타오르면 뭔가 우다다다 해내지만, 또 막상 조금 지루해지면 파사삭 식어버리곤 한다.


파이팅이 불타오르면 뭔가 우다다다 해내지만, 또 막상 조금 지루해지면 파사삭 식어버리곤 한다.


지난주에 내린 결론은 오전은 할 일이 정확해서 우와아아악 해낼 수 있지만, 막상 오후는 아직 딱히 명확히 정한게 없어서 파사삭 해진다는 건데... 그래서 이번 주에 오후 계획을 똭! 뽝! 하사삿! 짜려고 했는데! 벌써 수요일이네... 또르르...


암튼 그래도 출근에 0.1초 퇴근에 0.01초 걸리는 거 정말 너무나도 큰 행복. 더불어 매일 운동할 수 있다는 것도 울트라 초특급 우주 횡단 열차 급 행복이다. 물론 클라이밍 안 가는 화목에는 요가나 홈트 깨작깨작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햄보케...♥︎


다섯 시 기상. 여섯 시 0.01초 자체 퇴근. 점심시간 겸 운동 세 시간 삼십 분. 퇴근 후 자유시간. 9시 취침. 진짜 천국의 삶이 따로 없다. 이제 오후 파트 계획만 이번 주 내로 잘 짜서 다음 주부터 퐈이팅 폭발시키면 된다. 괜찮아 괜찮아. 결국 다 잘된다. 내가 보장한다. 암. 그렇고 말고. 오늘도. 퇴근하자 이제! 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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