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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즌졍 May 09. 2020

미용실 2년에 한 번가는 이유

[Essay] 돈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얼마나 좋다고요.

얼마 전에 가슴까지 내려오던 머리를 귀밑 3cm로 싹둑 잘랐다. 약 6-7년 정도 된 패턴이다. 단발로 싹둑 자른 다음에, 2년 동안 가슴까지 기르고, 다시 단발로 자르고, 다시 가슴까지 기르고, 다시 단발로 자르고. 단발로 자를 때 C컬 파마를 하면 약 7만 원(물론 첫 방문 50% 할인이나 생일 기념 할인 이런 거 해주는 미용실 가야 한다.) 이번엔 안 했더니 1만 5천 원 들었다.


이번에 미용실을 간 건 약 9달 만이다. 제목과 달라 실망했다면 사과드린다. 사실 작년의 나는 3-4번 정도 반복한 기르고 단발하고 기르고 단발하고에 좀 질렸었다. 원래는 머리 오래 길러야 하기 때문에 단발로 자를 때 절대 염색한다거나 층을 낸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C컬 파마는 관리하기 편하려고 하는 거고, 기를 때 별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항상 하는 편이었지만 그 외에는 절대. 네버.


다시 단발로 자르고, 다시 가슴까지 기르고, 다시 단발로 자르고.


작년엔 사실 단발로 자를 시기였는데, 긴 머리 레이어드 컷을 해보고 싶었다. 일자 단발과 일자 긴 머리에 너무 질려버려서. 그래서 긴 머리 레이어드 컷을 하고 나서 C컬 파마를 했다. 유후. 근데 오. 완전 맘에 들었다. 덕분에 돈 좀 썼지. 15만 원인가 줬던 거 같다. 부들부들 손 떨리긴 했지만 괜찮았다. 왜냐면 새 회사 들어가기 직전이었거든. 어차피 월급 다시 받기 시작할 건데 뭐 이런 생각이었나 보다.


그러고 나서 3달쯤 뒤에, 다시 또 새 회사 출근하기 직전에. 그러고 보니 새 회사 들어갈 때마다 머리를 새로 하나 보네. 암튼 레이어드 컷에 C컬 파마 하고 약 3달 뒤, 이번엔 그러데이션으로 염색을 했다. 머리 끝은 노랗게, 뿌리 쪽은 갈색으로. 원래는 3단으로 하고 싶었는데, 검정 - 갈색 - 노란색 이렇게. 미용실에서 뿌리 끝까지 다 갈색으로 염색시켜버렸다. 쫄보인 나는 미용실만 가면 쭈구리가 돼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제대로 말 못 하곤 한다. 미용실 분들은 왜 항상 무서운 걸까...


나중에 머리 자라도 티 안 나게.


그러데이션 염색을 한 이유는(사실 난 그냥 그러데이션 염색이라 불렀는데 나중에 주변 사람들이 알려줬다. 이런 스타일을 옴브레라고 부른다고. 후... 방금도 옴브레란 말이 생각 안 나서 구글에 검색해봤다. 어려워. 트렌디한 말.) 미용실 가기 싫어서였다. 크크. 난 그 염색하고 나서 뿌리만 자라는 게 그렇게 꼴보기가 싫다. 그렇게 되기 싫어서 그러데이션으로 해달란 거였다. 나중에 머리 자라도 티 안 나게. 근데 뿌리까지 다 갈색으로 염색해버려서 부들부들했지만, 이미 전체적으로 그러데이션이라 그랬는지 자라는 내내 이상해 보인 적은 없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레이어드 컷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미용실을 갔던 것도 회사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 들어갔을 때, 마지막 면접 보고 나서 내일부터 출근하란 소리 듣자마자 그날 미용실에 갔다. 그러곤 가슴까지 오던 머리를 단발로 쑹덩 자르고 C컬 파마를 했다. 나에게 머리를 새로 한다는 건 항상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군...! 물론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다 그럴 것 같긴 하지만.


이럴 때 머리 자르는 것 만한 게 없지.


이번에도 머리를 자른 게 사실 마음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싶어서였다. 코로나도 코로나고 백수 생활 5달째에 접어들고 있는데, 사업한답시고 벌인 일들이 약간씩 지루해지고 마음도 지쳐가는 와중에, 매일 꼬박꼬박 하던 플랭크도 잘 안 하고, 영어 공부도 소홀히하고, 소설 쓰던 것도 게을러지면서, 마음을 다잡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럴 때 머리 자르는 것 만한 게 없지.


그냥 일자 단발로 자르는 건데 돈이나 시간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에서 커트가 제일 싼 집을 찾아 전화해본 다음에 아침 일찍 갔다. 전화했을 때,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하셔서 대충 옷만 갈아입고 털레털레 갔다. 그러곤 10분 정도 기다린 다음에, 속전속결로 쑹덩쑹덩 잘랐다. 머리 자르는데 아마 10분 안 걸렸을 거다. 고데기해주신다고 하셨는데 괜찮다 했다. 어차피 그냥 집에 다시 돌아갈 건데 뭐. 덕분에 원래는 카드 결제하면 천원 더 받으시는 거 안 받으셨다.


한 번도 안 쓴 핑크색 세수용 헤어밴드를 쓸 수 있어서 좋다.


머리 감기 전엔 좀 어색하고 너무 기교 없이 잘랐나 후회했는데, 저녁에 머리 감고 나니까 꽤 괜찮았다. 삐죽빼죽한 게 만화 캐릭터 같기도 하고, 괜찮았다. 머리가 가벼워지자 기분도 산뜻하고, 샴푸 펌프질도 한 번만 해도 되고, 드라이기로 뿌리만 말려도 거의 다 말라서 좋다. 다만, 묶을 수가 없어서 세수할 때 앞쪽 머리가 다 젖는 거 빼고. 아, 그래도 옛날에 사은품으로 받아놨다가 한 번도 안 쓴 핑크색 세수용 헤어밴드를 쓸 수 있어서 좋다. 끝에 와이어가 들어있어 그걸 서로 꼬아주면 토끼 귀처럼 쫑긋 헤어밴드 끝이 서는데, 귀엽다. 만족스러어.


난 참 꾸미는데 돈을 못쓴다. 옷도 맨날 인터넷 쇼핑몰에서 한 피스에 만원 안 넘는 거 잔뜩 사 입고(싼 거를 많이 사서 입는 편이다.), 화장을 안 하니 파운데이션은 하나 사서 4년 쓰고(이러면 안 된다. 화장품도 유통기한 있어서. 여드름 생긴다. 근데 자주 안 쓰다 보니 어쩌다 한번 화장한 날 밤에 세수 잘하면 괜찮은 거 같긴 하다.), 미용실은 2년에 한 번 가니까.


꾸미는 법을 몰라서 그렇다.


근데 그거 아나. 꾸미는데 돈 못쓰는 이유. 꾸미는 법을 몰라서 그렇다. 옷도 잘 못 입고, 화장도 못하고, 머리도 사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맨날 그냥 주야장천 기르고 자르고 하는 거다. 나도 멋 부리는 법 알면 꾸미는데 돈 많이 쓰지. 나도 멋쟁이 되고 싶다. 근데 방법을 모른다. 알려주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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