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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즌졍 Jan 15. 2023

다 포기 해도 치매걸린 동생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

[Essay] 참고로 동생은 20살이 넘은 강아지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는 주제에 자극적인 제목으로 낚시를 한 점 부터 미리 사과하고 시작해보려 한다. 브런치가 아주 끈질기게 글을 안쓴지 270일, 300일, 330일, 360이 지났다며 징징거리는 알람을 보내왔음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자하는 욕망도, 의지도, 필요도 없는 나날을 보내다가 갑자기. 한시간 넘게 자려고 뒤척이는 와중에 머릿속에서 딱 브런치용 글이 하나 뚝딱 써져서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그 시간동안 나에겐 많은 일이 있었는데, 2년 반 동안 운영했던 사업을 접었고, (아직 법 개정 전이니까) 20대가 다 가기 직전에 겨우겨우 어찌저찌 시작해 1년 반을 끌고왔던 연애를 끝냈고, 지난 반년 간 집에서 치매걸린 내 하나뿐인 동생, 깜통이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내 삶은 미치도록 단조롭고, 미치도록 지루하며, 정말 놀랍도록, 노잼이다.


지금의 내 삶은 미치도록 단조롭고, 미치도록 지루하며, 정말 놀랍도록, 노잼이다.


사실 아직 공식적으로 사업을 접은건 아니지만 (아직 법인은 남아있기 때문에) 사업 관련한 일은 정말 거의 안하고 있고, 돈이 정말 일원 한푼도 없던 상태였기 때문에 부랴부랴 취직해 일을 하고 있긴 하다. 다행이도 풀재택을 할 수 있는 조직이자 포지션이라, 매일 집에서 강아지를 돌볼 수 있는건데, 참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간사한 마음이 들게 한다.


하루 온 종일 집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지금으로서는 나밖에 없는 상태라 낮동안에는 혼자서 강아지를 돌봐야 하는데, 치매걸린 우리 귀염둥이는 지금 현재 아주 손이 많이 가고 시시 때때로 나의 주의를 훔쳐가기 때문에 비록 지루하고 재미없고 사실상 오로지 월급 만을 위해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자꾸만 불만과 투정이 치밀어 올라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금의 일자리는 지금까지 받았던 연봉중에 가장 많은 연봉을 주지만, 작년 말 까지만 해도 이른바 농땡이를 넉넉히 피울 수 있을 만큼 의미없고 재미없는 일로 가득차있다. 사실 뭐 내가 엄청난 열정을 불태워 의욕적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고 하면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나의 꿈과 희망을 불태워 아름다운 커리어를 쌓아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월급은 따박따박 통장으로 잘 들어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나에게 그런 꿈과 희망이 없다. 딱히 원인을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나는 사업을 정리한 이후로, 아니 사실 그 이전부터 꽤나 오랫동안, 이게 정확히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는데, 지쳤다.


가장 많은 연봉을 주지만, 농땡이를 넉넉히 피울 수 있을 만큼 의미없고 재미없는 일로 가득차있다.


사실 지쳤다고 말하기 좀 부끄러운 것도 있다. 뭐 이렇게 지칠 만큼 그렇게 열심히 한게 있냐,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2년 반동안 사업을 이끌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열심히 안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말 미친듯이 열심히 한거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 워낙 뭐든 다 참 열심히 해서 나의 열심이 그다지 열심으로 보이지 않았던 걸 수도 있지만. 모르겠다. 그렇게 뭐 엄청 열심히 한거 갖진 않은데. 그거 좀 그렇게 열심히 했다고 이렇게 오랫동안 사람이 지쳐도 되는건가... 벌써 새 직장 온지도 6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여전히 지쳐있다는 건 좀 오바가 아닌가...


그러다 보니까 핑계인지 진짜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안하게도 나의 치매걸린 하나뿐인 동생, 강아지, 깜통이 때문이란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이리 기운없고, 의욕없고, 지루해 미쳐버리는 나날을 살아가면서도 이를 바꾸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게.


여행도 가고 싶고, 사실 이 조직 엄청 맘에 들어서 온건 아니었으니 이직도 하고 싶고, 기왕이면 해외 이직 해보고 싶고, 하는 김에 유학도 가고 싶고, 워홀도 가고 싶고. 내 인생의 목표와 계획이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운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하다보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온갖 서칭을 하며 계획을 구체화 시켜나가게 했지만, 이 모든건 깜통이가 죽어야 가능했다. 가끔 사람들이 나의 상황을 깜빡하고 여행가자! 그래 해외로 나가! 라고 할 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깜통이가 죽어야 할 수 있어."라고 말 할 때마다 돌아오는 겸연쩍은 반응이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말을 하는 내 가슴 속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그 진담에 나 스스로가 섬뜩하고 징그러워지곤 했다.


깜통이가 죽어야 할 수 있어.


근데, 근데말이다. 그렇다고해서 난. 우리 깜통이를 놓아버릴 수가 없다. 왜냐면. 난 내 하나뿐인 동생, 우리 깜통이를, 너무 많이, 사랑하니까.


내가 사업도 포기하고, 연애도 포기했지만, 깜통이만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가끔, 아니 사실 꽤 자주, 깜통이를 이제 그만 보내줘야하나... 싶을 때가 있다. 말이 좋아 보내주는거지 그냥 포기하는거지 뭐. 왜냐면 우리 강아지, 우리를 못 알아본지는 이미 너무 오래됐고, 하루종일 하는 거라곤 거의 김연아 뺨치는 무한 트리플악셀 수준으로 뺑글뺑글 돌다가, 앵 앵 짖으며 똥싸고 쉬싸고 똥싸고 쉬싸고. 그러다가 주는 물에 불려 으깬 사료와 고구마 받아먹고, 밤 되면 진정제 먹고 자는게 다니까. 이 모든 과정을 매일 반복한지 6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 슬프다가도 지치고. 그러다가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내가 이렇게 내 인생을 허비해도 되는건가. 나 아직 한창 커리어 쌓아가야 할 나인데.


근데 뭐 사실 깜통이 돌보면서도 커리어 잘 쌓을라면 쌓을 수 있지. 그냥 다 핑계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뭐 깜통이 없었으면 얼마나 열심히 살았으면 살았을 거라고. 한편으로는 이러다가 깜통이 가고나면, 이제 더이상 핑계거리도 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똑같이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봐 두렵기도 하다. 이런 나날도 길어봐야 1, 2년 일건데. 내 인생에서 1, 2년. 내가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잠시 이렇게 사는것도 뭐 괜찮지. 오히려 내가 지금 커리어에 집중하겠다고 우리 강아지에게 남은 시간을 줄여버리면, 내 남은 평생 지울 수 없는 후회가 문득문득 내 발목을 잡고 날 지하 끝까지 끄집어 내릴 것 같다.


끝까지 지루하고 재미없는 하루하루를 잘 살아나갈 수 있기를


깜통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게 얼마가 됐든, 부디 내가 끝까지 잘 버텨낼 수 있기를. 나에게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우리 귀염둥이와 내가 끝까지 지루하고 재미없는 하루하루를 잘 살아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사실 나 혼자서만 이걸 다 하고 있는건 아니다. 사실 나보다 엄마가 더 고생을 많이 하고 계신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이기적인 마음이 효심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게 하려고 할 때도 많은데, 그 마음도 모쪼록 내가 잘 통제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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