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10.
임신-출산-산후조리원으로 연결되는 게 당연해보였다. 산후조리원은 열달 동안 고생하고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듯한 극한의 산고를 지나온 엄마들을 위한 필수코스처럼 보였다. 나 역시 당연히 산후조리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우연히 들은 라디오에서 산후조리원 시스템이 이렇게까지 발달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게다가 아기가 온종일 밝은 조명 아래 태어나자마자 단체생활을 해야 하는 산후조리원, 과연 가는 게 좋을까?
생각해보면, 우리 엄마세대에서는 아기를 낳고 집으로 와서 따뜻한 온돌방에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도움 아래 산후조리를 했다. 산후조리원은 1995년 무렵 등장했다고 한다. 제왕절개 수술이 급격히 늘어나던 90년대, 병원 내 시설로 산후조리원이 생겼다가 창업붐과 함께 성행했고 IMF 이후 산후도우미가 주부들의 새로운 일자리로 떠오르면서 더욱 확산됐다고 한다. 저출산의 영향으로 타격을 입은 산부인과가 새로운 수입원이 필요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다.
산후조리가 필요한 이유
산후조리원을 가든 가지 않든, 산후조리는 정말 중요하다. 임신을 하면 '릴렉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는 아이가 자궁에 잘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엄마의 관절과 인대가 이완되도록 한다. 이때문에 출산 후 산모의 몸은 매우 약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산후 6주간은 산욕기라 하여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고 산후 100일까지도 되도록 무리하지 않는 게 좋다.
산후조리원에 가면 뭘 하지
자연분만의 경우 2박 3일, 제왕절개는 4박 5일간 병원에서 머물다가 보통 2주간 산후조리원에 가서 회복을 한다. 산후조리원에서는 삼시세끼 밥을 먹고 사이사이 간식을 먹는다. 주된 일정은 모유수유. 아기는 신생아실에 있다가 모자동실 시간이나 수유콜이 오면 그때 만나게 된다.
남들이 다 하는대로 산후조리원에서 산후 몸조리를 해야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처음엔 산후조리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19 때문에 남편도 들어갈 수 없어서 2주간 나홀로 외로울 것 같다는 이유가 가장컸다. 하지만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신생아 케어를 남편과 둘이 해야 한다는 게 막막했다. 그래서 결국 병원과 연계된 산후조리원 두 곳에서 상담을 받고 예약했다. 출산 후 몸이 많이 약해져 있을텐데 나와 아기를 돌볼 전문가들이 24시간 곁에 있다는 게 안심이 되었다.
산후조리원에 가고 싶지 않은 세 가지 이유
그런데 최근 책과 유튜브 등을 접하면서, 신생아 시기에 엄마와의 교감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다시 인지하게 됐다.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있다가 갑자기 밝은 세상에 나오게 된 아기는 굉장히 혼란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기에게 익숙한 엄마 냄새를 맡게 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 젖을 물리는 일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산후조리원 대신 집에서 조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24시간 아기와 함께하며 아기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싶다.
이렇게까지 신생아와 엄마가 떨어져 있는 경우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아기에게 엄마는 세상 유일한 끈일텐데 엄마와 아기가 함께하지 않는 걸 왜 우리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돈을 내고 몸조리하러 산후조리원에 가는데, 아기도 봐야 한다면 산후조리원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게 당연한 의견이다. 친구들도 맘카페에서도 산후조리원 천국을 외치는데, 결국 신생아실에 아기들을 모아놓고 케어하는 건 어른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엄마의 냄새를 맡고 살을 비비는 스킨십은 정서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기는 신생아 때는 돌보기 쉽다. 오히려 산후조리원 퇴소 후 3~7주가 어려워진단다. 그러니 자본의 논리로 아기와 나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해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둘, 산후조리원이 코로나19와 각종 바이러스에 취약한 단체시설이라는 점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 매일 산후조리원으로 출퇴근을 하는 직원들, 외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지만 필요한 물품은 남편에게서 받는 다른 산모들, 그리고 최대 20명씩 모여서 케어받는 신생아실의 아기들. 괜찮은 걸까? 겨울철만 되면 유행하는 RSV바이러스도 우려된다.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는다면, 산후도우미 선생님을 모셔야 할 것이다. 그래도 여러 명보다는 소수의 인원이 아기를 돌보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다.
셋, 심적으로 내 집보다 더 편한 곳이 있을까?
산후조리원에서는 2주간 나 혼자 지내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남편의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산후조리원의 순기능 중 하나로 조리원동기를 많이 꼽는데,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산모들의 정서가 얼마나 좋을지 의문이다. 다들 아기의 건강에 대한 우려와 약해진 몸 때문에 예민해져 있을텐데 가뜩이나 낯선 조리원에서 굳이 친목을 다질 필요가 있을까 싶다. 서로 공유하는 정보라고 해봤자, 다 초보맘들의 어설픈 지식들일텐데 말이다. 내 몸이 가장 약해져 있을 때 편안하고 익숙한 내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고 잘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했지만, 딱 결단을 내리진 못하겠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내가 과연 아기를 잘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그래도 산전에 열심히 공부하고 남편과 산후도우미 선생님과 함께 정성껏 돌보면 나라고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용기를 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