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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스인 Feb 16. 2024

화를 내고 나니
화를 낸 자신에게 더 화가 나네

프리랜서다 보니 일과 삶을 조율하는 게 큰 과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일이 너무 많다 싶으면, 상사에게 달려갔고 똑같은 월급 받으며 업무를 이고지고 하느니, 루팡이 되는게 낫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회사를 나와 건당 페이를 받으니 모든 일이 다 돈이다. 거부할 수가 없다. 


그렇게 지난 해를 미친듯이 일하고 열심히 애키우며 보냈다. 그리고 거북목이 되었다. 새해는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결심으로 일을 줄이고 마음 편히 살아보자 다짐했지만, 그게 또 내맘처럼 안된다. 아니 어쩌면 내맘은 그걸 원하는 게 아니었을지도. 막상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다. 매달 따박따박 꽂히는 페이가 없으면 왠지 초조해질 것만 같았다. 


그러던 차에 좋은 일감을 소개받게 되었고 그렇게 다시 또 무리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번 주만, 이번 달만 지나면 좀 나아질 거야 라고 가족들에게 호소했고 얼굴은 점점 누렇게 떠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 또 '뻥!' 터졌다. 모처럼 저녁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나를 위해 남편이 반차를 쓰고 아이들을 하원시켰는데, 그것이 문제였다. 평소대로라면 엄마와 함께 할머니 댁에 가서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실컷 보고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루틴이 달라지니 울음보가 터졌나보다. 아이들을 픽업하러 나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엉엉 우는 첫째와 어리둥절 둘째를 데리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너무 화가 났다. 


"애들을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 나 일하고 있잖아!"


남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첫째는 더 크게 울어댔다. 


"엄마, 메일만 좀 보내구~~!!"


그리고 또 '펑!' 남편은 후다닥 아이들을 데리고 장모님댁으로 대피했고 나는 엉엉 울었다. 처음엔 뻔히 일하고 있는 걸 알면서 아이들을 곧장 집으로 데려온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이후엔 왜 이런 같잖은 일로 가족득 특히 아이들 있는 데서 화내는 모습을 보였을까.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오느님의 명언.


"아이가 사랑하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만만하기 때문이다. 욱은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의 문제다. 내가 상대에게 얻을 것이 많다면 그 사람 앞에서 절대 욱하지 않는다. 나 없이는 못 사는 약자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욱하는 것이다. '자신이지만 이 아이는 내가 인간으로서 보호하고 종중해야지'라는 마음이 강하면 아이한테 욱하지 못한다."

- 오은영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집에 있으면 더 화가 날 것 같아서 예정대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친구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이제 막 결혼을 한 한 친구가 명절에 시댁 식구들이 갑자기 들이닥쳐서 너무 화가 났다는 이야기에 나는 '그게 왜 화가 나지?'라고 말했다. 그 말을 내밷고 아차차. 물론 사람들 모이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그걸 말로 꺼낼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서 나의 상황을 돌아보게 됐다. 남편은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가니 후딱 아이들 씻기고 밥 먹이면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내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데려왔단다. 나는 왜 내가 나간 후 아이들을 데려오면 내가 조금 더 편할 거란 생각은 못했냐며 책망했다. 


이것이 바로 입장차이. 


누구나 얼굴만큼이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한데,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나는 옳고 너는 틀려 라는 식으로 사고하고 대화하고 있었다. 재택근무를 하며 혼자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서 그런 것일까. 내면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게 아닌가 심히 우려스럽다. 


오늘도 이렇게 화를 내고 나니 화를 낸 자신에게 화가 난 멍충이 같은 나다. 내일은 좀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아니다. 성숙해질 것이다. 


화는 화요일에도 내지 않는 것!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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