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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눈박이엄마 Jul 07. 2024

나만 해결 가능하다는 리더십의 위험성

민주주의 위기 앞에서 '졌잘싸'는 없다

한동안 글을 안썼는데 미국 대선 돌아가고 있는 걸 보자니 도저히 답답해서 또다시 뉴스들 파고 있는 중이다. 글쓸일이 좀 없었으면 좋겠다... 



1. 바이든의 책임감 또는 고집 


바이든의 처참한 토론 성적이 미국 민주당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바이든은 토론 후 일주일만에 가진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나님이 아니고는 나를 물러나라고 할 수 없다"며 강력한 완주 의사를 비쳤다.



ABC 인터뷰에서 정치기자를 오래 한 조나단 칼은 인터뷰 중 바이든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주변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이든은 인터뷰에서 뉴욕타임즈 등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에 6%p 이상 뒤지고 있다는 질문에 계속 말을 돌리며 현 행정부에서 자신의 치적과 '범죄자' 트럼프를 비교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민주당은 패닉 모드다. 민주당 원로들과 지도부(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하킴 제프리스 현 하원원내대표, 짐 클라이번 전 의원)는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에서 한 발 떨어진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민주당 고액기부자들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망에 오르는 다른 민주당 인물들은 인지도는 높으나 정치공학적으로 불리하다던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 경합주 출신이지만 인지도가 전국적이지 않거나 (그레첸 휘트머 미시건주지사), 아니면 인지도가 정말 낮거나 (조쉬 샤피로 펜실베이니아주지사)하는 약점이 있다. 


2. 카말라 해리스 대통령?


지금이라도 후보를 바꾼다면 가장 당연하면서도 유력한 인물은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다. 절차적으로나 선거자금 측면에서나 가장 무리없는 이양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해리스 부통령이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떠오르지 않게 된 건 왜일까? 해리스는 부통령이 된 후 특별한 존재감을 부각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과 엘라이나 플롯 캘라브로 디아틀랜틱 기자는 최근 '에즈라 클라인 쇼’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떠오르는 스타’였지만 현재는 ‘정치적 성과가 부족한’ 정치인이 된 이유를 분석했다. 



우선 지난 대선에 비해 정치지형이 바뀌면서 해리스의 장점이 퇴색됐다. 해리스는 캘리포니아주 주법무장관에서 초선 상원의원을 거쳐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도전했다. 민주당 경선 토론에서 바이든의 30년 전 인종분리정책 지지 이력을 끄집어내 공개 비난해서 화제가 됐지만 (영부인 질 바이든이 이 때문에 해리스의 부통령 지명을 반대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결국 인종적 대표성을 고려해 부통령으로 지명됐다. 


그는 인도계 흑인 여성이다. ‘범죄에 강하게 대응하는 검사’ 이미지가 상충되긴 했으나 2020년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백인 경찰들이 과도진압해 사망하게 한 사건 이후 인종정의가 크게 대두되던 시기라 해리스의 정체성이 표를 끌어모으는 데 도움됐다. 그러나 4년 동안 미국 내에서 인종정의를 비롯한 다양성에 대한 백래시가 두드러지면서 ‘흑인 여성 대통령’이란 정체성으론 트럼프의 지지층을 끌어오기란 역부족이란 분석이다. (미셸 오바마와 트럼프가 대결하면 오바마가 승리한다는 여론조사가 있지만 오바마가 지금 이 시점에서 출마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부통령은 태생적으로 2인자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자리가 아니지만, 대통령에 가장 가까운 자리이기도 하다.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이 된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레이건 정부의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된 조지 H.부시가 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IT-환경분야에서 눈에 띄는 업적을 남겼고 정부 조직을 개혁하는 일을 진두지휘한 앨 고어 부통령이나 노련한 40년 의회 경력으로 결정적인 법안 타결을 이끌어냈던 바이든 부통령, 심지어 외교 정책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의 딕 체니 부통령을 떠올려 보자. 


3. 정치인 해리스의 한계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임기 초 NBC 인터뷰에서 멕시코 국경 이민자 이슈 질문에 버벅이는 답변을 한 후 언론 노출을 억제했다고 한다. 실수할까봐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검사 출신인 해리스는 특정한 이슈를 파고들거나 누군가를 추궁할 때는 잘 해내지만 국정 방향성 등 거시적 이슈에 대한 답변을 잘 하거나 영감을 주는 연설을 잘 하는 타입이 아니다. 해리스에게는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도 했고 본인도 실수하지 않으려고 몸을 사렸다. 


캘라브로 기자는 해리스 부통령과 인터뷰를 위해 부통령실에 초대받았을 때에 대해 회고했다.해리스 자체가 매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기자에게 “최근에 결혼했다면서요? 배우자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야 해요”라며 잠시 인간적 매력을 보였지만, 이렇게 1대1로 만나는 모습을 연방정부 정치에서 보여주긴 어렵다. 


국민들에게 성과를 드러낼 기회도 적었다. 전통적으로 미 부통령의 역할은 의회와 백악관을 잇는 것인데, 초선 상원의원에서 바로 부통령실로 직행한 해리스가 역대급으로 분열되어 있던 미 상하원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대부분의 국정이슈에서 해리스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단 한가지 예외가 있는데 미 대법원이 임신중지를 합법화했던 1973년 판결을 2022년 뒤집었을 때다. 해리스는 적극적으로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4. 후계자 적극적으로 키우지 않은 바이든, 부메랑으로 돌아온 책임감


그런데 해리스의 실패가 해리스만의 탓일까? 기자는 해리스 부통령이 ‘대통령 유고시 바로 투입 가능한 대통령감’으로 자리매김되지 않은 건 결국 대통령실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지적한다. 대통령이 되려면 확실한 개인적인 매력이 있어야 유권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데, 해리스가 실수를 두려워하거나 2인자로서 나서기 어려워하더라도 대통령실이 적극적으로 그를 키워줬어야 한다는 거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시기도 타고나야 하지만 개인적인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 돌아보면 언론 접촉을 잘 하지 않던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 결심 후 토크쇼 등에 적극적으로 나갔지만 해리스 부통령의 노출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바이든은 해리스에게 국경 이슈처럼 고난도의 과제를 맡기기는 했지만 나중에 결정적인 역할이 필요할 땐 대통령실이 나서서 하는 형식으로 부통령이 빛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를 감안했을 때 백악관이 ‘후계자 양성’을 제대로 못한 것이 결국 독으로 돌아온 셈이다.


5. 망하는 길인데도 가려는 리더: 몰입상승효과


<기브앤테이크>로 유명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애덤 그랜트 조직심리학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즈에 “바이든 대통령이 빠진 덫에는 이름이 있다”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몰입상승효과(Escalation of commitment)>가 그것이다. 조직심리학자 배리 스튜가 주장한 이 개념은 조직에서 분명 잘못된 방향인데도 고집스럽게 그 방향을 고집하는 리더의 성향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코닥은 1970년대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해 특허를 갖고 있었음에도 디지털 사진 방향을 추구하지 않았고 특허는 무효화됐으며 결국 파산했다. 


몰입상승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세가지다. 1. 해당 리더가 그 조직 결정에 대해 직접적으로, 공개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거나 2. 오랜 기간 동안 그 방향을 추구해 왔고 끝이 보이는 것 같은 상황이거나 3. 성공을 리더 스스로 확신하는 경우다. 그랜트 교수는 바이든은 이 3가지 상황에 모두 해당한다고 봤다. 


그랜트 교수는 바이든을 압박하는 대신 ‘지지 네트워크’가 아닌 ‘반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며 ‘이너서클’이 아닌 주변 인물 중 바이든이 신뢰하는 사람이 직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6. '내가 혼자 해결하겠다'(I alone can fix it)의 위험성


바이든 대통령은 지더라도 자신이 나서서 지는 게 낫다고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주요지들은 이에 강력한 우려를 표하며 여전히 바이든이 ‘대의를 위해 용퇴’할 것을 설득하고 있다.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못한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정치 지형에 불어닥칠 광풍 때문이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말하기엔 위험이 너무 크다는 거다. 


보수성향 대법원은 최근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면책특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극단적으로 대통령이 정적을 암살해도 면책특권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함께 상하원 선거도 치러지는데 대통령 후보의 인기가 상하원 의원 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트럼프가 지금과 같은 기세를 이어가고 민주당이 갈팡질팡한다면 부통령 자리를 포함해 민주당이 간신히 1석 우위인 상원도, 공화당이 근소하게 우위인 하원도 다 공화당이 장악할 수 있다. 


이렇게 3권을 다 장악한 트럼프는 대통령 임기를 2회로 제한한 헌법을 뜯어고치려 시도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1기 정부에서 트럼프가 가장 많이 한 말 중 하나는 ‘I alone can fix it!’였다. 코로나가 닥쳤고 ‘혼자 해결하겠다’던 트럼프의 만용은 재선 실패로 이어졌다. 그런 트럼프를 물리치고 대통령이 된 바이든은 트럼프 저지를 위해서는 자신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I alone can fix it’의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정치 참 모를 일이다.  


* 글을 쓰면서 지나친 책임감은 독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부터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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