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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May 24. 2023

08. 수면 위로 띄워 올린 암기의 기술

나를 일으켜 세워준 삶의 장치

    

초등 2학년,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성경 암송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교회 주일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주일마다 성경 한 구절씩을 암송하게 했었다. 

그런데 암송대회에서는 한 구절이 아니라 성경의 한 장(한 장이 40절이 넘는 것도 많다.)을 통째로 외워서 틀리지 않고 암송해야 했다.



새로 오신 인형처럼 예쁜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성경 암송대회에 나가보자” 

하는 말에 두말없이 나가겠다고 했다.

암송대회 지정 말씀인 요한복음 14장을 외우기 시작했다. 

(참고로 요한복음 14장은 31절까지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무슨 말인지도 다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입에 붙는 대로 외웠던 듯하다. 

성경에는 워낙 고어들이 많고, 문체 자체도 일반 문장과 달라서 자연스럽게 읽는 일조차 아홉 살 아이에게는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날부터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쉬지 않고 외우기 시작했다.     








먼저 1절을 반복해서 읽는다. 입에 붙을 때까지 읽고 나면 성경에서 눈을 떼고 기억을 더듬어 외워본다. 

막히는 부분이 어딘지 확인하고, 다시 소리 내어 읽는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 외워본다. 

열다섯에서 스무 번쯤 반복하고 나면 1절이 겨우 외워진다. 



1절이 입에서 줄줄 나오도록 외우고 나면 2절로 넘어간다. 

2절도 마찬가지로 입에 붙을 때까지 읽고 보지 않고 외워본다. 

막힘없이 외울 수 있으면 1절과 이어서 외워본다. 

1절과 2절이 자연스럽게 나오면 3절로 넘어간다. 


    

이렇게 한 절 한 절 외우고, 1절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연결해서 외우기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한다. 

암송 대회가 있는 날까지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외웠다. 

선생님과 함께 연습하고 집에 가면 혼자서도 연습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요한복음 14장을 외우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었고, 누가 갑자기 툭 쳐도 탁 튀어나올 정도로 달달 외우게 되었다. 



혹시나 내가 긴장하거나 당황해서 잊어버릴까 봐 선생님께서는 내 앞에서 온갖 손짓으로 내가 그 구절을 기억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마치 수화를 하듯 화려한 손동작으로 다음에 말해야 할 구절에 대한 힌트를 주셨다.     








마침내 대회 날, 엄마가 사주신 연두색 투피스에 흰색 타이즈를 입고 파마한 단발머리를 반묶음 한 채, 상기된 표정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섰다. 

태어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선 것은 처음이었다. 

떨리는 손발에 아무리 힘을 주어도, 염소처럼 달달 떨리는 목소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들어 보이시는 선생님을 보자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선생님만 보면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리듬을 타며 암송하기 시작했다.     



끝날 때까지 비브라토 섞인 목소리로 암송했지만, 단 한 구절 한 낱말도 막힘없이 틀리지 않고 암송했다. 

첫 대회의 결과는 2등이었다. 

나보다 훨씬 커 보이는 남자아이가 당당하게 나오더니 열중 쉬어 자세로 우렁차고 떨림 없이 요한복음 14장을 암송해 버리는 걸 보고 ‘쟤가 1등이네’ 생각했다. 

아니다 다를까 그 아이가 1등을 차지했다. 

그래도 첫 대회에 2등이라니 그간의 노력들이 헛되지 않아 감격스러웠다.








지금은 그때처럼 요한복음 14장을 완벽하게 외우지 못한다. 

하지만 입으로만 달달 외웠던 그 말씀을 이제는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요즘은 암기가 좋지 않은 학습법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물론 이해하지 않고 무턱대고 외우면 활용을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내 경우 툭 치면 탁 튀어나올 정도로 암기했던 문장들은 장기 기억 속에 저장되어서 어떤 순간이든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순간, 기도가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 내 마음속 자동 기억장치가 작동되면서 이 말씀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곤 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아홉 살에 외웠던 그 말씀들이 근심 걱정이 있을 때,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생겼을 때 검색서비스의 자동완성 기능처럼 따라붙었다. 

암송대회에 참가한 이후 간절히 원하는 목표가 있으면 그 일을 이룰 때까지 무수히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내겐 당연한 진리가 되었다. 



습관처럼 반복하고 노력해서 로봇처럼 외울 수 있는 경지까지 가지 않으면 긴장하거나 당황하면 머릿속이 하얘져 버려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다. 

머릿속이 하얘져도 입으로는 외운 것들을 줄줄 읊을 수 있으려면 무수히 반복해서 내 몸의 근육처럼 만들어버려야 한다.     



그 이후에도 나는 성경 암송대회, 성경 구연동화 대회, 웅변대회 등을 거치며 첫 암송 대회 때 체득한 노하우를 꾸준히 활용했다. 

그 노하우란 잘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지겨우리만치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잠꼬대로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원고를 달달 외워버리는 것. 

그렇게 외워버리고 나면 말의 높낮이와 강약을 조절하며 연기까지 섞을 수 있게 된다.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감칠맛까지 더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의욕이 없는 날도 제대로 외워둔 원고는 쇠사슬처럼 연결되어 한 문장 다음엔 그다음 문장이 또 다음 문장이 줄줄이 연결되어 입 밖으로 나오게 된다.     







“결국 삶이 더디 흘러가거나 반대로 흘러가는 듯 느껴질 때, 스스로가 가라앉지 않게 다시 수면 위로 자신을 띄워 올릴 수 있는 삶의 장치들이 필요하다. 아무런 의욕이 없을 때, 무너지지 않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을 때, 그럼에도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런 건 대개 마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일상을 이끄는 의식이나 자기만의 습관화된, 믿을 수 있는 일련의 행위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정지우 작가의 저서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문장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스스로를 구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각 개인은 무엇이 되었든 자기를 구하는 방법을 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지우 작가에게는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글쓰기라고 한다. 

쉬지 않고 쓰다 보면 늪 속에 빠진 것 같은 날에도 조금씩 다시 떠오르고, 원래의 삶의 흐름 위로 돌아가게 된다고.     



글쓰기는 꾸준히 하면 근육이 붙는 일이다. 

쉬지 않고 반복하다 보면 책이라는 하나의 아웃풋이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하는 일 자체가 가장 어려운 일 아닐까. 

매일 반복하는 일련의 행위, 즉 습관이 되지 않으면 말이다. 



때로 목표한 일이 있어도 꾸준히 하는 습관이 없으면 이루어내기 어렵다. 

혹 단번에 쉽게 이루어 낸 일이라면 오래가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듯 공든 습관이 쉽게 무너지지 않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습관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한 번에 그 긴 문장들의 이어달리기를 완주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한 구절 한 구절 지루하고 답답하게 암기하는 시간을 견뎌낸 것처럼. 

마른입에 고구마 하나를 입속에 밀어 넣은 것 같은 그 순간, 딸꾹질이 나와 다 토해버리고 싶은 그 숨 막히는 순간을 견뎌내야만 목구멍으로 넘어가 습관으로 자리 잡는 순간이 온다.



내 삶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던 시절, 내게는 정지우 작가의 말처럼 “스스로가 가라앉지 않게 수면 위로 자신을 띄워 올릴 수 있는 삶의 장치들”이 필요했다. 

그 장치란 나를 이해하고, 나를 둘러싼 타인을 이해하고,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까지도 알 필요가 있었다. 

이런 노력을 꾸준히 반복하는 일은 지루하고 답답했지만, 수면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백조의 발처럼 끊임없이 발버둥 치지 않으면 가라앉게 되는 것이었다.

겉으론 우아한 척했지만 수면 아래에서 미친 듯 발버둥 치며 만들어낸 습관들은 나를 수면 위에서 숨 쉬게 했고, 하나의 강을 건너 더 넓은 강으로 이끌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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