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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현 May 25. 2023

09. 중요한 건 태도를 선택하는 일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도

“어…. 어…. 어떡해!!”

“쾅!”     


차가 턱을 넘어 언덕 아래로 향하다가 전봇대를 살짝 비켜 아래로 처박혔다. 

그 충격으로 차가 멈춰 섰고, 나는 이마로 앞유리창에 한번, 입술로 핸들에 한 번 세게 부딪쳤다.

유리에 금이 갔고, 내 입술 안쪽은 심하게 터져 엉망이 되었지만, 놀랍게도 얼굴에는 눈에 띄게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스무 살 여름, 대학교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 집에 내려간 나는 방학 동안 운전 면허증을 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운전학원에 등록하고 실기 연습을 하러 간 첫날, 사고를 내고 말았다.

선생님은 나더러 커피 한잔 마시고 올 테니 차에서 기다리라고 했고, 나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얌전히 운전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내가 그날 운전을 처음 배우러 온 학생인 줄 몰랐던 어느 직원이 

“시동 걸고 출발하세요.”

라는 말을 던지고 갔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키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기어가 중립에 있었는지 드라이브에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시동을 걸자마자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운전석에 난생처음 앉아본 나는 액셀과 브레이크조차 구분 못 하는 생초보였다.          

차가 중립에 있어도 사이드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으면 차가 움직인다는 것조차 모르는.

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연습장 바깥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찌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는 "어…. 어…." 소리만 내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뒤늦게 오던 선생님은 깜짝 놀라 차를 향해 달려왔지만, 이미 차는 턱을 넘어 아래로 향하는 중이었다. 

감사했던 건 차가 전봇대에 들이박지는 않아서 다행히 더 큰 충격은 피할 수 있었다는 거였다.

선생님은 문을 열고 괜찮냐고 물었고, 정신이 없었던 나는 입술과 이마가 터져도 아픈 줄도 모르고 괜찮다고 했다.          



운전을 배우러 간 첫날 제대로 사고를 낸 거다. 

선생님은 학생을 혼자서 차 안에 두었던 실수 때문에 몹시 미안해하셨고, 오늘은 많이 놀랐을 테니 일단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운전을 배우러 갔는데, 핸들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집에 가려니 억울했다.

게다가 그렇게 크게 사고를 내고 다쳤다고 하면 부모님께서 운전을 못 하게 하실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다고 했다. 달달한 커피 믹스 한잔이 들어가니 정신이 제법 돌아오는 것 같았고, 그대로 집에 가지 않고 그날 배우기로 예정된 것들을 배우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 달을 바짝 연습한 끝에 실기에 합격했고, 도로 주행까지 일사천리로 합격해 버렸다.



첫날 있었던 사고는 면허를 따고 나서야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사실은 운전 배우러 간 첫날 내가 대형 사고를 냈었다고.

놀란 부모님은 어이없어하셨지만, 결과적으로 큰 문제없이 면허증까지 딴 후였기에 그냥 웃고 마셨다.          







그날, 운전학원에서 겪은 사고는 마치 인생을 살다가 만난 통제할 수 없는 사건 같았다.

갑작스럽게 만난 사고로 입 안의 여린 살들이 다 터져서 한동안 물 마시는 것조차 쓰라리고 따끔거려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면허를 따기까지 그 일을 몰래 접어두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매일 학원에 갔다.

그런 나를 보며 운전학원 선생님조차 고래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내가 그렇게까지 열심이었던 이유는 운전을 배우는 일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덩치가 큰 자동차라는 대상을 액셀과 브레이크라는 내 발보다 조금 더 큰 발판 두 개와, 동그란 핸들 하나로 조정한다는 일이 내겐 몹시도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내가 밟는 대로 속도가 달라지고, 핸들을 돌리는 대로 방향이 바뀌고, 원하는 장소에 차를 이리저리 돌려 딱 맞춰서 주차했을 때의 희열도 상상 이상으로 컸다.

운전에 익숙해져서 내가 원하는 곳으로 차를 몰고 달린다는 상상을 하면 입안이 터진 것쯤이야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능숙하게 운전하게 되는 날만 꿈꾸며, 하루하루 발전하는 운전 솜씨에 몹시 만족스러웠다.      


    






최인아 작가는 저서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에서 태도가 경쟁력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피투성의 존재로 왔습니다. 우리의 의지나 선택으로 태어난 게 아닙니다. 때문에 한평생 산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의 일에 반응하는 것이며,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세상사에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전부일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태도'라 하는 건 이런 반응들의 총칭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즉 어떤 태도를 갖는가가 특히 마흔 이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제 생각이고요.”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일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건 사고들에 내가 어떤 태도로 반응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하게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건, 사고는 미리 준비하고 대처할 수가 없다. 

예정된 변화 또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비교적 의연하게 또는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닥친 변화나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불운 앞에서 의연하고 긍정적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 모든 순간에 나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나에게 있다.

차가 턱을 넘어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 순간, 나는 예상할 수 있었다.

차가 언덕 아래로 내려가 처박히겠구나 하고. 

그런 사고 자체가 일어날 것은 예상할 수 없었지만, 이미 사건이 진행 중인 순간엔 아주 잠깐 섬광처럼 최악의 상황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것도 무의식 중에 인지했던 것 같다. 

예상은 적중했고, 나는 몇 초 후 사고의 당사자가 되어있었다.     


     

사고가 난 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태도는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 다시는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다른 하나는 처음이라 몰라서 그랬으니까, 제대로 배우고 연습해서 결국에는 면허를 따는 것.

내가 후자를 택했던 까닭은 면허를 따서 스스로 운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내 인생이라는 차를 타고 핸들을 돌리며 방향을 조절하고, 액셀과 브레이크로 속도를 조절하는 일도 자신의 의지로 해 나가야 한다. 

사고를 당하더라도 다 접어버리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깐 다독이는 시간을 가지고, 당 충전을 한 후 다시 도전하기 위해 일어서야 한다.

내 인생이라는 자동차를 자신의 힘으로 운전해 나가고 싶다면 말이다.         


 

최인아 작가는 “시간의 밀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산은 정확하다”라고 말한다. 

결국 상황과 관계없이 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운전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핸들에 손을 얹고 액셀을 밟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야 한다. 운전의 감각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온몸으로 그 시간에 빠져들어야 한다.



교통사고 당하듯 닥친 인생의 고비 앞에서 택할 수 있는 태도는 이것이다. 

사고는 당했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 다시 제대로 운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배움에 돌입하는 것. 

그리고 매일 반복하는 것이다. 

내가 이 차의 주인이라 여기며.

결국 나는 운전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액셀을 밟으며 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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