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아름다움과 동급으로 비교된다는 이 궁전은 가득 찬 정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름에 걸맞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널따란 정원이 반겨준다. 그러나 우리가 여행하고 있는 계절은 겨울. 정원의 아름다움을 직관할 수 없는 계절이다.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바로 귀에 수신기를 꽂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의 뒤를 따라가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귀 기울여 들었다. 마치 견학온 유치원생들 같다. 마침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단체로 견학을 왔다. 이런 곳을 견학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아이들도 언젠가 알게 되겠지.
궁전의 내부는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메인 홀에는 초등 고학년 아이 여섯 명 정도는 손잡고 빙 둘러서도 될 정도로(짐작만 했을 뿐이다) 큰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했다는 샹들리에를 한참 우러러봤다. 목이 아플 즈음 바닥에 깔려있는 카펫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카펫이라고 하는 말에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볼 수 있었다. 벽과 기둥 천장 어디 하나 빈틈이 없을 만큼 조각과 정교한 무늬가 새겨져 있어 눈을 뗄 수 없었다. 술탄이 사용한 서재는 창을 열면 바다가 훤히 보였다. 저런 곳에서 책을 읽으면 어떨까.
<출처: 네이버 여행정보>
술탄의 음악 레슨실과 흡연실, 화장실, 손님용 방을 보면서 상상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그러다 커다란 풍선에 구멍이 난 것처럼 상상력에도 구멍이 나버렸다. 후계자가 되지 못한 자녀들을 가둬놓고 식욕과 성욕만 채워주었다는 새장, 지하에 있는 여자들만의 공간인 하렘이라는 공간을 본 탓이다. 앞으로는 화려함의 극치이지만 그 뒤로 감추어진 공간은 음습함과 아픔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200개가 넘는 방이 각각 다른 콘셉트로 꾸며져 있다니 오스만인들의 건축과 인테리어 기술과 술탄의 위용을 동시에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라 그런지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메인홀을 지나 나오는 길, 다시 한번 돌아보니 이곳에서 단 하루라도 자고 일어나 식사를 하고 산책과 독서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잠시 돌바바흐체 궁전에서 술탄으로 사는 하루를 상상해 보았다.
“나 여기 살고 싶어.”라는 엄마에게 아이들은 “엄마, 그러면 술탄이 되어야 해.”라며 달래듯이 밖으로 등을 떠민다. 술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영화로라도 찾아봐야겠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겨우 떼내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닷바람과 배를 타는 정박장의 크고 화려한 문이 또 한 번 눈길을 사로잡았다. 실내만큼 외관도 아름다운 돌마바흐체를 뒤로 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패키지 일행분의 사진을 찍어드리고, 우리 가족사진도 맡겼다. 어느 순간 그분은 사진사가 되어 우리 가족을 세워놓고 포즈와 표정까지 요구하고 계셨다.
"아니 아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서봐요."
"엄마, 아빠도 자연스럽게 웃어야지!"
다리는 들고, 서로 바라보고, 자연스럽게 등등. 여행을 자주 다녀보셔서인지 사진 찍는 것도 베테랑이시다.
버스로 돌아가는 길, 가득 찬 정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꽃 한 송이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자 튀르키예에 열 번도 넘게 오셨다는 일행분께서(튀르키예가 매력적인 나라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분이 그 나이는 많지만 친구라 불린 그분이다) 다른 계절에 또 오라고 하셨다. 사계절을 겪어봐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사람도 제대로 알려면 사계절을 다 겪어봐야 한다. 그 사람의 태도와 진짜 성격을 알려면 다양한 상황을 함께 겪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계절을 겪고 나면 멀어지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지만 돌마바흐체의 사계절은 사랑에 빠지기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정원과 그 안에 피고 지는 꽃은 사계절이 다 매력적일 테니까.
버스에 올라탈 때는 언제나 서둘러야 한다. 일정이 빽빽하게 정해져 있는 패키지여행에서 약속된 시간에 버스에 타지 않으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다음 이동할 장소는 앙카라였는데,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도시다. 이동하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게 된 것은 휴게소 곳곳에 송아지만 한 개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지나다녀도 발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세상 편한 자세로 드러누운 개들은 우리 같은 여행객들을 하루에도 수십 명을 만날 테지.
점심 식사로는 미리 주문해 둔 수프와 빵, 닭다리와 밥 그리고 감자튀김이 나왔다. 음식들이 전반적으로 짠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은 남김없이 맛있게 먹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오늘 밤 묵게 될 호텔로 이동했다.
호텔에 도착하기 전 맥주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맥주를 사는 일행들 틈에 섞여 홀린 듯 튀르키예 맥주 네 캔을 사고 아이들이 마실 음료와 견과류, 과자를 조금 샀다. 가이드는 일행들 사이를 오가며 맛있는 맥주와 음료, 안주를 알려주느라 바쁘다.
자유여행으로 왔다면 선택의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도 있었을 테지. 그것조차도 여행의 재미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먹는데 진심인 우리 가족은 성공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만족해했다. 자유 시간이 짧다고 불평하던 마음이 이런 순간에는 눈 녹듯이 녹아내린다. 맛없거나 입에 안 맞는 음식을 먹을 때의 불쾌함이 깔끔하게 생략되고 바로 성공으로 직행할 수 있다는 점은 패키지여행의 장점이기도 하다. 아니 가이드의 세심한 배려가 제공하는 편안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