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현 Jul 30. 2024

13. 소금 호수에 발도장 찍기   

  소금호수는 앙카라로 넘어가는 길에 잠시 들르는 장소였다. 튀르키예어로는 투즈괼이라고 하는 이곳은 튀르키예 소금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곳이다. 사전 조사한 바로는 핑크빛 호수에 그림자가 져서 아름다운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기억은 사라져도 사진은 남는다. 

 사진을 보면 흐릿해졌던 기억이 선명도를 높인 것처럼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핑크빛 호수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 한 장 남기리라는 결심으로 긴 이동 시간을 버텼다. 




 


"자, 투즈괼에 거의 다 도착했어요. 주무시는 분들 일어나시고요."


 가이드의 안내 소리에 잘 버틴 줄 알았으나 감겨있던 눈을 뜨고 창밖을 봤다. 핑크빛이 어디에 있나... 아무리 찾아봐도 파란 물이 찰랑거리는 호수 아니 바다 같은 풍경만 펼쳐지고 있었다. 

 충주호인가? 



 핑크빛 호수는 여름에 호수의 물이 증발되고 소금 결정체만 남았을 때의 풍경이라고 한다. 특히 겨울철은 강수량이 많아 호수에 물이 많아져서 그저 일반 호수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결론은 핑크빛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 찍을 꿈같은 기대는 그야말로 꿈이라는 것.



 핑크빛 호수를 볼 수 없다는 점은 실망스러웠지만, 여행에서의 모든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은 이상 실망했다며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버스에서 내려 기념품 가게를 지나 계단을 내려갔다. 호수 앞 투즈괼이라고 적힌 대형 이름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며 실망하지 않은 척 경쾌하게 걸어갔다. 

 


 그 앞에서 셀카를 찍던 한 외국인 청년이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냐며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나는 선뜻 스마트폰을 받아 들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포즈를 잡는 게 어색하고 쑥스러운지 머뭇거리면서도 혼자만의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열심히 피사체가 되어주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그런 노력이 멋쩍어지지 않도록 나 역시 열심히 찍어주었다. 가로로 세로로 열심히 찍어 휴대폰을 건네주니 만족해하며 Thank you를 외친 청년은 우리 가족사진도 찍어주겠다며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처음 본 낯선 사이라도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암묵적인 룰은 세계 어디에서든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호수 앞에 다가서니 바람이 활기차게 불어와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날렸다. 파란 호수는 수평선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멀리 보여 누군가 호수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면 바다라고 착각했을 것 같다. 함께 왔던 일행들은 대부분 버스로 돌아가고 우리 가족은 마지막까지 남아 소금 호수의 짠 바람을 조금이라도 더 마셔보려 애썼다.              



 


 갈대밭에 드러누워 등이 가려운지 비벼대는 커다란 개와 이름판 앞에서 마치 그곳의 마스코트인양 자리 잡고 앉아있는 개를 구경했다. 지금 이 순간도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될 거라고 아이들에게 말했지만, 그건 나에게 주는 위로이기도 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순간들이 있다. 생각보다 재미있지 않거나,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거나, 생각보다 멋지지 않은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불만스러워 툴툴대며 보냈던 시간들을 다 합치면 얼마나 될까? 그 시간들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한 번씩 웃거나 우스갯소리로 슬쩍 넘겼다면 어땠을까? 이미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곱씹고 후회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 누군가는 이야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숱하게 그런 시간들을 곱씹고 후회했기에 이제는 안다. 그래봤자 남는 건 불쾌한 기억뿐이라는 것을. 내 추억을 아름답게 남기기 위해서라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웃음거리를 찾아내고, 억지로라도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 유익한 일이라는 것도.     


이전 12화 12. 화려함의 극치 돌마바흐체 궁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