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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Oct 13. 2022

노력과 자존감에 관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을 내 식대로 받아들였을 때.



무언갈 해냈을 때, 이루었을 때 스스로가 좋아지는 건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꽤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그 어떤 것으로도 나를 덧입히지 않고도, 그저 있는 그대로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진짜 자존감이라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자."


조금이라도 더 가져야할 것 같고, 성공해야 할 것 같은 세상에서 이 말은 내게 달콤하게, 또 옳게 들렸다. '거봐, 더 빨리, 높이 가지 않아도 틀린 삶은 아니야, 이미 나는 존재 자체로 귀한 사람이야.'같은 생각들을 했고, 무언갈 가져야 비로소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됐다는 사람, 자꾸만 노력을 강조하는 사람을 볼 땐 오히려 자존감이 낮은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언젠가부터 알게 모르게 내 안에서 ‘노력’이라는 개념에 점점 반감이 생겼던 것 같다. 세상이 인정하는 성공의 기준에 대체로 크게 부합하지 못하는 나의 반항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가진 것, 이룬 것으로 판단하는 세상 분위기에 따라가기 싫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노력이란 걸 아예 놓고 산 건 아니지만 우선순위는 늘 내 마음이 원하는 일, 마음이 편한 일이 먼저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했다. ‘노력’에 크게 힘을 쏟지 않기로 했으면 있는 그대로 내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야되는 것 아닌가.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지 않았다.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특별한 무언갈 이루지 않아도,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는 이들이. 아주 드물었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 나는 그게 잘 안됐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쉽지 않았다.


하기 싫고 힘들지만 해야하는 것(노력)보다 내가 그저 하고 싶은 것, 내 몸이 편한 것을 했을 때 내 마음은 어땠나. 미루고 미루다 바닥에 물건들이 나뒹구는 걸 지켜보며 식탁만 겨우 치우고 식사를 할 때의 기분은 왠지 전혀 개운치가 않다. 한 시간, 두시간, 점심 때가 다 되도록 여전히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며 폰만 보며 시간을 보내버린 날엔 몸은 편한 반면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할 때가 많다. 저녁도 든든히 먹어 놓고선  한밤 중에 치킨을 시켜 먹는 날엔 4~5조각만 먹어도 금새 후회가 밀려온다. 내 몸이 편한대로, 내 본능이 원하는대로만 지내는 시간 속에는 자기애도, 자존감이라는 것도 있는 불씨마저 사그라드는 느낌이 들곤했다.



반대로 조금 귀찮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공간에서 간단하더라도 정성들여 나를 위해 맛있는 한끼를 차려 먹을 때, 다이어리에 적어놓은, 별 것 아니지만 내게 필요한 투두리스트를 실천한 후 연필로 항목을 지워나갈 때, 너무 먹고싶었던 야식을 꾹 참고 다음날 개운하게 비워진 속으로 일어날 때, 그럴 때 나는 확실히 기분이 더 좋고 스스로가 더 기특하게 느껴졌다.


 ‘있는 그대로 지내는 것’과 ‘게으르게 지내는 것'은 다르다. 나의 생활 속에선 그 둘을 똑같이 취급하는 일이 많았다.


어떠어떠한 성취가 없어도 사람 존재 자체가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귀하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러나 내 사고는 꽤 이분법적이었다.

‘사람이 있는 그대로 귀하고 소중한데 굳이 노력이란 걸 할 필요가 있을까.’ 대략 이런 의식 흐름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애쓰고 아등바등하는 식의 노력은 후에 부작용을 낳는다는 걸 안다. 그러나 세상엔 그런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력(노력의 중심, 목적을 타인, 외부에 둔 노력)만이 아닌 다른 종류의 노력들도 있다.


가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상황을, 무대를 즐기며, 여유가 흐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마음을 울리는 사람은 무대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 진심이 잘 전해지기 위해 그들은 무대 뒤에서 수백 수천번의 노력을 쏟는다. 스스로가 무언가 하고 싶고 마음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싶어하는 노력들, 순수한 노력. 순수한 열망에의 노력. 세상엔 그런 노력들이 있다. 어쩌면 나는 그 노력들의 가치도 함께 낮게 평가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나는 내 자존감의 중심, 기준을 타인에게 두고 시작했던 것 같다. 남들에게 세상의 잣대, 일반적인 성공의 기준으로 판단받는 게 싫으니 그 기준으로 가게 하는 그 ‘노오력’이라는 것의 힘을, 가치를 지워버리려 했던 것 같다. 중심이 내 안에 있어야했다. 내 인생을 가꾸고 만들어나가는 일, 오롯이 나로부터, 내 안에서 시작했어야했다. ‘외부를 의식하는 채로 나는 이러이러하게 살거야, 그 잣대 맘에 안드니 나는 그걸 안할거야.’보다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고 이러이러한 삶이 가치있다고 생각해. 그러니 나는 그 길로 가기 위해 이러이러한 걸 할거야, 이런 방식으로 살거야.’와 같이, 내 안에 중심을 두었어야했다. 내 삶은, 나 이 외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않는다. 당연하면서 무서운 말이다. 결정도 내가 하고 결정에 대한 책임도 결국 내가 진다. 똑똑하게 판단해야한다.   



나는 노력을 좋아한다. 노력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순수하게 노력하고 때론 실패하고 울고 웃는 얼굴들을 사랑한다. 생활에 리듬을 주고, 어지러운 내 생활을 정돈을 하게 하고, 뿌듯함과 성취감을 주기도 하는 이 노력이 좋다. 노력은 죄가 없다. 노력의 이유, 방향이 중요하다면 중요할 것 같다.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부단히 노력을 하며 살아도 된다. 그건 나의 선택이다. 단, 애먼 노력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인생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사는 것과 손 놓고 방관하는 것을 착각하지는 말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가 진심에서 우러나와 하고파 원하는 노력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님을 똑똑히 마음에 새기자.


한번 뿐인 삶이 소중해서, 이왕이면 잘 살고 싶어서, 후회없이 살고싶어서, 이 밤에 주저리 주저리 생각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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