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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an Oct 17. 2019

우울의 추억 - 꿈꾸던 우울증이 현실이 되었을 때

투병의 일상화, 일상의 투병화. (1)

사춘기의 형태는 생각보다 다양한가 보다. 나의 경우, 사춘기를 표현할 키워드는 '슬픔', '우울함', '센티멘탈' 등등의 뻔한 단어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사춘기를 겪던 흔한 어느 날, 가만히 세어보니 내가 일주일 동안이나 '나는 우울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짝사랑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내가 실체 없는 우울함에 빠지고 말았다고 생각(하고 싶어)했다. 그때 즈음 막 활성화되기 시작하던 온라인 공간에 참으로 당당하게 글을 끄적였다. "우울증 일주일째." 마치 내가 점유한 단어처럼 느껴지는 '우울'이라는 말에 '증'이라는 말을 붙인 이 단어가 실제 존재하는 병의 이름일 것이라는 그땐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냥 나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증폭시켜 표현해 주는, 날 위해 준비된 극적인 단어인 줄만 알았다.


"우울증 일주일째"라는 그 게시물, 무의식 중에 다분히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며 올렸을 그 게시물에 대한 반응이 나의 예상보다 훨씬 심각해졌을 때에야, 그 '우울증'이라는 것이 극적인 표현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의 부끄러움을 겪은 후, 사춘기의 나는 다시금 상념에 젖고야 말았다. 아니, 내가 이렇게 우울한데, 내가 우울증이라는 표현을 쓸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이건 말도 안 돼. 누가 이런 불쌍한 나에게 "너는 우울증이야!"라고 선고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나의 감정, 나의 감수성, 나의 슬픔, 나의 우울함(을 빙자한 허세)을 공인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 그 꿈이 대략 17년 즈음 후에 이루어 지고야 말았으니, 나는 그때의 나를 돌이켜 보며 기뻐해야 하는 걸까.




2019년 3월, 서른이 훌쩍 넘은 어느 날, 태어나 처음으로 '진단서'라는 것을 발급받았다. 병명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한 상황이므로 최소 한 달 이상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소견. 그 진단서를 받던 순간, 그 길로 휴직 신청을 위해 상사를 만나러 가던 길목, 아무 걱정 말고 푹 쉬고 오라는 상사의 위로를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서던 그때, 사춘기 시절 나의 간절한 바람이 생각났더라면 그때 나의 기분은 어땠을까?


새해가 되고, 회사에서의 내 환경에 약간 변화가 있었다. 필연적으로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었다. 폭풍과도 같이 고난과 역경을 숱하게 헤쳐온 그런 삶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지금껏 살아온 바 이겨내지 못할 스트레스가 분명히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주말 침대에 누워 철 지난 시트콤을 보다 갑자기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진정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너무 무서웠다. 죽을 것 같다기 보단, 차라리 죽기라도 해서 지금 이 끔찍한 무언가가 얼른 끝나버렸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유행어 비슷하게 되어 버린, '공황'의 첫 증상이었다.


공황이고 뭐고 나는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나의 현실과 아주 미세하게나마 관련 있는 무언가 눈에 스치기만 해도 그 증상의 첫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분. 그 기분을 아주 오래 버티지는 못한 채 결국 상담을 받고, 상담사의 강권에 정신과를 찾고, 공황과 우울이 함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단서를 받고, 휴직을 했다. 사춘기 시절의 그 꿈은 떠오르지 않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그리고 진찰을 받으면서, 거의 울다시피 물은 말이 있었다.

"지금 나의 모양새는 누가 뭐라 해도 회사에서의 변화에 적응 못하고 나가떨어진 꼴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 스트레스는 분명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못 이길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 더한 스트레스를 나는 분명 겪어왔고, 이겨왔다. 지금 이 상황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솔직히 자존심 상한다. 쪽팔린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의 상담사로부터, "쌓인 게 터진 거예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현상을 토로하고 울부짖고 걱정하던 시간이, 자연스레 무언가가 쌓여왔던 과거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과거, 과거, 과거. 쌓여왔던 것들이 생각나기 전에, 사춘기 시절 나의 꿈이 이루어졌음이 먼저 생각났다. 빌어먹을.




'27세 클럽(The 27 Club)'이라는 것이 있다. 커트 코베인,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그리고 최근의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등. 수많은 전설적 아티스트들이 27세에 요절해 버려 그들을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사춘기 시절 때마침 너바나를 듣고, 커트 코베인을 좋아하고, 그의 유서를 찾아 읽었다. 음악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 그림을 봐도 내 눈에 멋있고 내가 동경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우울했다. 사춘기의 나도 뭔가 그런 아티스트 같은 기질이 있는 것만 같은데 마침 짝사랑에도 실패했다. 그래서 우울하고 싶었나 보다. 그때 내 눈에 위대한 창조자들은 모두 우울했고, 그때 나에게는 그 명제의 역도 성립했었나 보다.


딱히 별 볼일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절대 위대하지도 않은 그런 삶을 살다, 극복 못할 모진 시련이 아닌 작은 돌부리 같은 일에 자빠져 허우적대다, 아무것도 창조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장래희망이라며 썼던 수많은 직업들은 죄다 내 곁을 떠나갔는데, 어린 시절 꿈이 뭐 하나가 이루어지기는 했다고 해야 하나. 무엇이든 창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내게 '그런 거 하다 우울증 걸려'라고 타박하던 친척은 나의 병을 알면 뭐라고 할까.


이렇게까지 소름 돋게 내 꿈이 이루어질 줄 알았으면 명제의 기본에 대해서는 좀 더 숙지한 상태에서 꿈을 꿀 걸 그랬다. 그 시절의 나에게 찾아가 '수학 시간에 졸았니? 역 따위 성립하지 않아, 우울증을 얻었다고 아티스트가 되지는 못한다고. 이 멍청한 중학생아.’라고 말을 하면 그때의 나는 그 말을 알아듣기나 하려나.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던 어느 날, 문득 그때 감수성의 나였으면 약 따위는 쳐다도 보지 않고 죽고 싶어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걸릴 거면 지금 걸린 게 다행이야. 감사할 일이지.라고 생각하기로 한 채 약을 넘겼다. 어쨌거나 모든 일에 때가 있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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