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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Feb 10. 2024

임상 심리하려다가 상담 심리하게 된 썰 1

(다음 2탄으로 이어집니다)

학부과정 중, 진로 갈등을 겪다가 멘붕와서 교내 학생생활상담소에서 상담이란 걸 받았습니다. 그때가 1999년도였네요. 일단, 저의 진로 갈등이란 무엇이냐? 저는 뮤지션이 되고 싶고, 창작자가 되고 싶고,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는데 외적인 이유로는 아버지의 반대, "너는 공무원이 답이다." 하, 그게 답이라고요? 결사반대입죠. 그런데 그런 외적인 이유는 사실 핑계였던 것 같습니다. 


진짜 이유는 제가 뮤지션의 길을 갈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그것도 몰랐죠. 그냥, 아버지가 반대해서 나는 못하게 되었네. 아버지 정말 싫다, 요렇게 생각을 했었죠. 일차원적인 접근. 하, 꼬맹이!


그런데, 저는 왜 뮤지션의 길을, 창작자의 길을, 예술가의 길을 갈 수 없었을까요? 가고 싶다던 그 길을 왜 안 간 걸까요?


타고나길 예민한 기질, 남들이 잘 못 듣는 소리도 듣고, 남들이 잘 못 보는 것도 보고, 귀신 아냐? 그렇죠. 저는 귀신같은 면이 있는 인간입죠. 그 인간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한 일은 안 듣기, 안 보기였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안 듣고, 안 본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제 유년기~청소년기에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환경적인 외상들이 있었습니다. 기질과 환경의 결합. 강력하죠.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었을 거라고 이제는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도 받아들여집니다.


이어서 다시 가겠습니다. 안 듣고, 안 보면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네네, 관계가 잘 될 리 없죠. 안 듣고, 안 보면 관계는 어렵게 됩니다. 관계가 잘 안되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뻔하지요. 한 가지의 진로를 잘 잡고 가기가 어려워집니다. 뮤지션의 길을 가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은 인내력과 관계력, 그리고 도전하는 힘. 


도전하는 힘은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순간적인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모아서 쓰는 일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내력이 젬병이었습니다. 그것도 아버지 탓을 할 수 있겠죠. 어느 정도는. 분명 아버지가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 아버지 '때문에' 가 아니라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이자 감사할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정말 이거 없으면 안 된다,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죽기 살기로 달라붙어서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 당시에는 그런 근성과 절박함도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 한답시고 휴학하고, 연애하다가 박살 나서 학교로 돌아와서 심리 상담을 받았는데, 저를 상담해 주시던 상담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상담 일을 꼭, 하고 싶다! 이게 내 업이 되겠구나,라는 확신으로 심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합니다. 


석사과정에 진학했는데, 헐~ 임상 및 상담심리학과 일반대학원인데 뭘 그렇게 공부를 많이 시키는지, 의대에 편입한 느낌이 들었고, 한 학기 한 학기 적응하다 보니 또 멘붕에 번아웃이 오고 말았죠. 아이고, 두부 멘탈! 멘붕이 온 이유는 사람에 대해서 병리적인 공부는 끝없이 하는데,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는 좀 그런 경향이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 학교 분위기가 그랬을까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즤 학교 분위기가 그랬다고 합디다.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요. 여하튼 그때 그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병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공부는 조금 재미가 있긴 한데, 임상심리사가 되어서 병원에서 심리검사를 진행하고, 심리평가 보고서를 쓸 자신이 없었습니다. 소설을 쓰면 썼지, 어떻게 보고서를 쓰냐, 그것도 3년씩 병원에서 수련을 받아야 하다니! 병원의 차갑고 수직적인 분위기를 그 당시에는 감내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람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일에도 단 1의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지원을 했는데, 병원 측에서 저를 뽑아놓고, 네가 선택해라!고 하더군요. 제가 튈 것 같이 보였나 봅니다. 뽑아놓고 다닐지 말지 네가 선택하라니, 기가 찰 노릇이죠? 저는 3년, 아니, 1년, 아니 3개월도 그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자신이 없어서 그냥 안 하겠다고 하고 병원 문 앞에서 임상 심리와 이별을 했습니다. 

이별하는 마음은 아주 상쾌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쌈빡했고, 스스로의 선택에 일말의 후회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갔더라면 참 아름다운 결말이었겠지만, 인생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더랍니다. 이 글을 이제야 이어서 쓰네요. (못 쓸 줄 알았는데, 쓰게 된 걸 보니 그동안 조금 자랐나 봅니다. 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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