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엄두가 안 날 때가 있습니다. 실타래가 엉켜 붙어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도 모르겠는데, 안 하면 생존에 위협이 오는 일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 동일한데 딱히 생존을 위협하는 건 아닌데 내 정체성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생존에 위협이 된다면 엄두가 안 나도 하겠지요. 안 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안 하면 죽는다는 위협의 신호가 들어오더라도 하다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생각뿐 아니라 신체 감각도 도저히 못 버티겠다,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올 때가 있죠.
이럴 때 어떻게 하겠어요? 하다가 죽을래요? 아니면 그냥 안 하고 죽으실래요? 사람마다 다른 대답을 하겠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겠지요. 내가 안 하고 죽기를 선택하는 것도, 하다가 죽기를 선택하는데도 다 이유가 있을 것 같네요.
제가 왜 이 글을 쓸까요? 저도 이 부분에 걸린 게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랍니다. 다시 이어서 가보자면, 사람마다 다 역사와 배경, 상황과 성향도 다릅니다. 그런데 천편일률적인 잣대(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함)로 본인을 몰고 가는 건, 일단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고요? 본인을 몰고 가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못 하겠고, 못 살겠다, 또는 살기 싫다, 또는 완전히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못 느끼는 무감각의 좀비 상태]로 귀결이 되니까요.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일단 살아있기라고 생각합니다. 무감각의 좀비 상태로 존재하더라도 일단 살아있고, 삶이 이어지다 보면 상황이 바뀌고, 생각도 바뀌게 되어서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이 더 이상 내 생존에 위협을 안 미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실타래가 빠른 속도로 풀리기도 하겠지요.
생존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을 하려는데 당최 엄두가 안 날 때가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좀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살펴보아야 할 지점인 것 같네요. 그 일을 정말 해야 하는지, 그 일을 할 에너지로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거나 의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나로 하여금 그 일을 못 하게 하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파악해야 할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또 중요한 것은 [정말 내가 그 모습이 되고 싶은가?]입니다. 정말 되고 싶다면, 이런 머뭇거림의 과정은 없지 않을까요? 글쎄요. 글쓰기를 멈추고 생각해 보니 정말 되고 싶더라도 현실적인 한계(걸림돌)가 있다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무엇이 최선일까요? 네네, 알겠습니다. 답답하시죠? 물론 너무 잘 압니다. 일단, 최선보다는 차선도 있다는 것, 기억하시길 바랄게요. 현실적인 한계가 있기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속도로 나아갈 수는 없겠지요.
저는 당최 엄두가 안 나는 일이지만 제 생존에 위협이 안되는 일에 대해서는 엄두 안 나는 마음에 대한 글쓰기를 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글을 쓰면서 제 마음의 걸림돌과 현실적인 한계들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떠다니던 생각들을 잡아서 문장으로, 단어로 쓴 뒤에 다시 내 눈앞에 펼쳐 놓았을 때 제 머뭇거림과 미적거림이 일단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면, 그 마음을 좀 헤아려줄 마음의 공간이 생기더군요. 그 마음을 헤아려주게 되면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아주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냐고요?
그건 제가 쓴 문장들 속에 표현된 마음의 소망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일을 매일 반복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반복하는 것의 힘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매일매일 반복한다는 것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를 연결시키는 것, 다시 말해서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나를 토스하는 것이 되겠지요.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은 더 나아져있을 테니, 내일 나는 좀 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서, 이 글도 하루 만에 쓴 글은 아닙니다. 하루 만에 빨리빨리 써서 발행하는 글의 한계를 잘 압니다. 어제 조금 쓰고, 오늘 조금 매만지고, 어제 쓴 글을 읽다 보니 생각이 좀 더 발전해서 오늘의 이 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한계를 모르고 계속 수정하고 싶고, 더 완전하고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과 마주하겠죠. 그러면 글은 발행이 될 수 없겠지요. 적절한 한계 설정도 꼭 필요합니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수준은 정말 미묘한 예술의 경지와 맞닿아 있겠네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일은 한 번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매일 하는 건 쉽지 않겠지요. 매일매일 하다 보면 엄두 안 남의 감각이 조금씩 무뎌지지 않을까요? 이 글을 쓴 이유는 제 자신을 설득시키고 납득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도 같네요.
또는 엄두가 안 나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는 모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엄두가 안 나는 마음을 가지신 분들과 만나서 천천히 마음을 나누고 싶기도 합니다. 다음 글은 감당이 안 되는 마음에 대해서 쓰고 싶어지네요. 역시 말과 글은 해봐야 각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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