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친구를 떠나보내며
16일 오전, SNS를 통해 황망한 소식이 전해졌다. 인디 레이블 러브락 컴퍼니의 기명신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사고가 아니었다. 급환도 아니었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인디 신에서 그의 존재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가 음악계에 몸담기 한참 전부터, 나의 오랜 지인이기도 했다.
2000년 초였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꿈이라면 하나였다. 뭔진 몰라도 넥타이를 매고 아홉시에 출근해 여섯시에 퇴근하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막연하게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정도였다. 신촌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김작가 되시죠?” 초면의 어색함같은 건 전혀 없이, 마치 친구를 마주쳐 반가워하는 표정과 말투였다. 인터넷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랑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홍대앞에서 이런 저런 작은 공연 기획을 하고, 하이에나처럼 술자리를 찾아 해매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약간의 곡절을 거쳐 우리는 함께 하게 됐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말도 없던 시절, 주변의 재미있는 친구들을 모아 예능 프로를 만들고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출연진 중에는 홍대앞 펑크 뮤지션들이 꽤 있었다. 기명신은 나에게 처음부터 그랬듯, 그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음악을 알고 모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고, 거부감없이 확 가까워지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얼마 후 나는 회사를 떠났고, 그 회사도 곧 망했다. 그 후 자주 만나거나 연락하지는 않았어도 뭔가 함께 할 만한 일이 있을 때, 그는 먼저 연락을 하곤 했다. 비록 성사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인터넷 방송 PD, 방송작가, 전시 기획사, 친환경 기업 등 음악과 상관없는 삶을 살던 그가 갑자기 인디 씬에 몸담게 된 건 2009년의 일이었다.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소속사와 결별했다. 밴드의 리더 이주현은 막막했다. 그는 나와 기명신이 몸담았던 인터넷 방송국에 출연했던 걸 계기로 기명신과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기명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기명신과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그렇게 만났다. 러브락 컴퍼니의 시작이었다. 그 후 기명신은 깜짝 놀랄 만큼 인디 씬에 동화되었다. 타고난 친화력을 바탕으로 음악계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갔다. 그건 처세나 정치가 아닌, 정말 좋아서 하는 거였다. 인디 레이블 연합인 서교 음악 자치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을 때는 그가 이 ‘바닥’에 들어온지 일년도 안됐을 때였다.
그에게는 대부분의 음악계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난 구석이 전혀 없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어디서나 적극적이었다.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계산기 두드리지 않고 소매를 걷어 부치곤 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도 그 어떤 외국인과도 대화하는 신기한 능력도 갖고 있었다. 음악계에 몸담게 몇 년이 지나도, 그래서 인디 씬으로 통하는 중요 인물의 하나가 되었음에도 처음과 다름없이 쾌활하고 친절했다. 교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았다. 아마 홍대앞의 역사에서 그렇게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도 없었을 거다. 소속 뮤지션들과 그렇게 꾸준히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내는 이도 없었을 거다. 누군가는 그의 죽음에 이렇게 붙였다. “인디 씬 최고의 조력자였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게 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가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러브락 컴퍼니의 실장인 이성훈과 소속 밴드 피해의식을 택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SXSW페스티벌로 보낸 후, 한국 스태프에게 잘 부탁한다고 연락한 게 15일 오후였다. 그랬던 그가, 왜 극단적인 결정을 했는지는 오로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 굳이 적지는 않겠다. 그런다고 달라질 게 무엇이랴. 부질없을 뿐이다.
2014년이었을 거다. 어느 페스티벌 뒤풀이에서 고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작가야, 난 요즘 너무 행복해. 인디쪽에서 일하길 너무 잘한 것 같아.” 우리가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의, 경망스러우면서도 사심없는 표정으로 그는 말했다. 친구를 떠나보내는 길에 바래본다. 부디, 호도와 악의 없는 곳에서 즐거운 또라이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