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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기쁨

홍대 쫄깃쎈타에서 쓰던 앰프가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기기였지만 그래도 무난한 소리를 들려줬다. 2년 가까이 썼다. 어차피 여기가 음악을 전문적으로 트는 공간도 아니고, 음덕들이 모이는 공간도 아니니 아쉬움은 있었어도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말썽을 피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결행했다. 집에서 쓰던 앰프를 갖고 왔다. 


한동안 집에서 음악을 듣지 않았다. 못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아버지랑 같이 살게 되면서 부터다. 함께 사는 가족이 있는데 음악을 만족스러운 볼륨으로 듣는 건 어쩐지 눈치가 보이니까. 특히 밤에는 더욱 더. 그래서 장비를 하나 둘 씩 쫄깃쎈타에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몇 번의 음악 관련 이벤트를 했던 계기로. 맨 처음에는 턴 테이블을, 그 다음에는 스피커를, 또 그 다음엔 DAC를 갖다 놨다. 결국 앰프까지 갖다 놨으니 이제 집에 남은 장비는 CDT와 케이블들 뿐이다. 


오디오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리 오래가 아니다. 음악을 듣고 말하는 게 업인 상황에서 좋은 소리에 대한 욕심은 있었지만 그 세계로 안내해줄 사람이 없었다. 엄두도 나지 않았다. 고작해야 헤드폰이나 이것 저것 써보는 게 다였다. 그러다가 차츰 PC 스피커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조금씩 소리의 기쁨을 알아나갔다. 물론 그래봤자 제대로 된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곳에서 빵빵하게 들으며 마시는 기쁨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2008년 늦봄, 처음으로 자취다운 자취를 하게 되었다. 인테리어도 하고 술도 갖춰 놓는 그런 자취. 생존이 아니라 생활을 위한 자취. 친구들을 종종 불렀다. 음악을 듣고 술을 마셨다. 제법 좋은 아지트였다. 그 무렵 알게 된오디오파일이 있었다. 그 분은 틈만 나면 나를 오디오 월드로 초대했다. 그래도 음악 듣는 게 업인데 이왕이면 제대로 된 소리로 들어야할 것 아니냐, 라는 말이 원 펀치였다.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소리를 들려준 게 결정타였다. 그 분의 조언에 힘입어 이런 저런 기기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질렀다. 우선 스피커부터 시작했다. 이런 저런 모델들 중 펜오디오 레벨2를 선택했다. 은인이 오디오 장터에 글을 올린 후 얼마 있다가 팔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내방역 근처의 오디오 숍이었다. 


레퍼런스로 가져간 제프 버클리의 <Grace>와 U2의 <Joshua Tree>, 레드 제플린의 4집과 오자와 켄지의 데뷔 앨범을 들었다. 오오, 오오, 오오. 몇 년 전 인티머스를 질렀을 때와는 가히 차원이 다른 소리에 나는 진심으로 경탄하고야 말았다. 소리가 주는 상상력의 실체를 먼 발치에서나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누구라도 경탄할 수 밖에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은인은 속삭였다. "여긴 너무 넓어서 소리가 썩 좋다고 할 수 있는 편이 아니에요. 작업실에서 들으면 더 좋을걸?" 그 스피커를 업어왔다. 어차피 예산은 한정적, 중고로 사야 하니 한 꺼번에 모든 걸 갖출 수는 없었다. 에이프릴의 스텔로 시리즈로 CDT와 DAC를 들이고 마지막에 앰프를 샀다. 이번에 쫄깃쎈타에 가져다 놓은 크릭 5350SE다. 



아직도 선명하다. 시스템을 갖춘 후 들었던 몇 곡의 음악들이. 매시브 어택의 'Angel' 도입부에서 정수리를 때리던 타격감이. 라디오헤드의 'Paranoid Android'에서 펼쳐지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제프 버클리의 'Halleluja'를 들을 때 스피커 사이에서 느껴지던 그의 입술이. 이 모든 경험은 그저 귀로만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시각과 촉각, 그리고 마음으로 동시에 스며 들었다. 섹스와도 같았다. 좋은 사람과의 섹스가 그저 시각과 촉각으로만 쾌감을 부르는 게 아니듯, 소리도 그랬다. 진짜 음악을 만나는 듯한 기분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인 게, 그 때 시스템을 갖춘 후 한 번도 바꿈질을 하지는 않았다. 케이블 정도 몇 번 바꾼 정도다. 


같은 해 초였나. 김창완 아저씨와 첫 인터뷰를 했을 때였다. 그 분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 음반도 듣고, 레코딩 잘 된 음반도 듣고. 소리가 주는 상상력에 대해서 경험을 했지. 음악 이전에 소리가 있었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을 거야. 우리가 경외롭게 생각하는 게, 처음에 천둥소리나 호랑이 울음 소리를 들으면 다들 기절 초풍을 할 거에요. 동네에서 개 짖는 거나 소가 우는 것과 호랑이가 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에요. 호랑이 입에서는 천둥이 나오는 소리가 들려요. 그러니 너무 놀라잖아. 그런 경험과 비슷한 걸 좋은 소리를 들으면 느껴요. 우리 상상력이 너무 트랜지스터에 위축되어 있구나. MP3에 갇혀 있구나.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펼쳐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되죠. 그건 경험해봐야해요. 천둥 소리 듣고 파도 소리 듣던 귀가 어디간거야. 안돼요. 우리는 2집에 '어느 날 피었네'를 녹음하면서 움트는 소리를 만들어 보려고 했어요. 그걸 녹음하려고, 그 사운드를 만들려고 수십가지를 해봤죠. 물론 그런 소리는 없겠죠. 하지만 상상에는 있어요. 처음 시작은 유리가 금이 가는 소리로 시작해서 솜털이 삐져 나오는 소리, 그래서 꽃이 확 웃는 소리를 재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못했죠." 


오늘 앰프를 바꾸고 음악을 들었다. 바로 몇 분 전까지 들리던 음악과 다른 음악이 있었다. 2009년 어느 날 느꼈던 그 기분을 다시 느꼈다. 홍대 쫄깃쎈타의 공간 구조는 음악이 꽤 잘 전달되는 구조다. 직사각형에 스피커가 긴 방향쪽을 보고 있어서 그렇다. 비록 케이블까지 바꾸지는 않았어도, 양쪽 스피커의 높이가 서로 달라도, 공간의 이런 모양새와 크기 때문에 집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입체적이고 두텁고 선명하다. 음악을 듣는 기쁨, 소리를 느끼는 충만함에 아무도 없는 쫄깃쎈타에서 볼륨을 한 껏 높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기시감이 다가왔다. 처음 시스템을 갖추고 사람들과 음악을 들었다.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음악만 들었다. 어색함이 없었다.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듣는 감정이 언어 이상의 대화로 전유되곤 했다. 묻지 않아도 함께 있는 공기가 분명히 답하고 있었다. 다시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다. 취한 밤의 습도가 기분 좋게 높아지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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