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eer & Cigarette

톰 웨이츠 'Warm Beer and Cold Women’

가끔 화가 날 때가 있다. 맥주를 마실 때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에. 그것도 음악과 맥주가 함께 할 때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이건 말이 안된다. 성부, 성자, 성령 중 하나를 빼놓고 삼위일체를 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술과 담배를 온 몸으로 머금고 있는듯한 음악을 들을 때는 시간을 되돌려 한 이년 전 쯤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담배 연기가 산소 농도와 자웅을 겨루던, 그 시절의 음악 술집으로. 


딱 한 잔이 아쉬운 날이 있다. 그럴 때면 음악 술집으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 정말로 딱 한 잔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다. 그래도 대부분은 지켰다. 그 날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바로 스스로와의 약속을 잊어 버렸다. 라거 생맥주 한 잔이 위장을 채울 무렵, 나오던 노래 때문이었다. 톰 웨이츠의 ‘Warm Beer and Cold Women’이었다. 미지근한 맥주와 싸늘한 여자. 접속사를 제외한 각 두 개씩의 형용사와 명사로 모든 상황을 말해주는 제목 아닌가. 게다가 탐 웨이츠다. 목소리에 술과 담배를 모두 품고 있는 남자. 자신의 작품 <커피와 담배>에 그를 출연시킨 짐 자무시는 이렇게 말했다. “톰 웨이츠의 음악을 모른다면, 당신은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잃고 사는 것이다.” 그렇다. 당신이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1973년 데뷔한 톰 웨이츠는 ‘뮤지션들이 사랑하는 뮤지션’이다. 사포로 갈아 낸 것 같은 목소리, 실패와 좌절의 한복판에 갖힌 욕망을 그리는 시적인 가사, 초기 재즈와 블루스를 기반으로 광기와 불안의 경계를 소요하는 음악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돼왔다. 복제될 수 없는 압도적 아우라이기도 했다. 스칼렛 요한슨의 가수 데뷔작은 톰 웨이츠의 노래들을 리메이크한 앨범이었으며 박찬욱 감독도 톰 웨이츠에 대한 장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음악과 영화, 문학을 막론하게 그는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어떤 심상의 결정체같은 존재로 살아왔다. 


‘Warm Beer and Cold Women’는 톰 웨이츠의 1975년 앨범이자 첫 라이브 앨범에 담긴 곡이다. 스튜디오에 소수의 청중을 모아 놓고 녹음한 이 앨범은 얼핏 들으면 시카고나 뉴 올리언즈의 오래된 펍에서 행한 작은 공연의 기록처럼 들린다. 스튜디오의 엄숙함은 오간데 없고, 주정뱅이들과 흥취를 나누는 듯한 현장감과 즉흥성이 일품이다. 웃음과 박수, 환호가 바의 그것처럼 생생하다. 이 노래는 ’Tempatation’이나 ‘Hold On’같은 대표곡 반열에 오를 수준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노래에 딱 한 잔의 약속을 저버린 건 한 술집 때문이다. 홍대앞에 있던, 지금은 갈 수 없는 음악 술집. 그 곳의 주인장은 톰 웨이츠를 정말 좋아했다. 손님들과 어울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손님들보다 취해 있는 모습을 보기란 결코 드물지 않았다. 그런 그는 한껏 취하면 역에 들어서는 기차가 경적을 울리듯 톰 웨이츠의 노래를 틀곤 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반드시라도 좋을 만큼 톰 웨이츠를 틀었다. 나 역시 그 가게에서 톰 웨이츠의 노래들을 많이 알게 됐다. ‘Warm Beer and Cold Women’는 그 가게의 마감송이었다. 


내일을 준비하거나 더 이상 맥주를 마실 수 없는 손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엔 지지부진함이 남기 마련이다. 식은 맥주를 앞에 놓고 음악에 취해 있는 사람들, 아니면 그냥 취해서 몸을 못가누는 사람들. 잃어버린 시간 위에 올라 타 있는 손님들이 끝내지 못한 문장의 말줄임표처럼 떠돈다. 그 바의 단골들에게 ‘Warm Beer and Cold Women’은 퇴근을 알리는 알람과 같았다. 텅 빈 바위에 놓인 식어 빠진 맥주잔을 치우면, 쩌든 담배 연기도 창밖으로 빠져나갔다. 노래가 다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남은 맥주보다 차가웠던 밤공기 속으로 흘러 나왔다. 비교적 쉽지 않은 이 노래의 멜로디를 따라 부르게 될 즈음, 그 바의 문은 닫혔다. 주인장이 세상을 떠났다. 수영하듯 한강에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조금은, 아니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자리에 다른 술집이 들어오기도 전에 조금의, 아니 적지 않았던 충격도 무뎌졌던 것 같다. 다른 음악 술집을 찾아내어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 그 노래를 마감 송으로 틀지 않았던. 


강물을 찾아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누우처럼 새로운 음악 술집을 전전했다. 딱 한 잔을 위해 찾았던 곳에서 ‘Warm Beer and Cold Woman’를 들었다. 손님은 나 밖에 없었다. 주인 형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나는 금지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세상을 떠난 그 바의 주인장보다 그 바에서 함께 음악을 듣고 취했던 젊었던 그녀들이 떠올랐다. 맥주잔이 식을 틈을 주지 않았던, 아니 이미 맥주의 온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게 마음을 달아 오르게 했던. 


-Beer Post 4월호에 실림.

매거진의 이전글 일했다, 조휴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