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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의 병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만나던 날

태양은 바다 너머로 기울고 언덕에 자라난 풀은 바람을 머금었다. 에딘버러 항을 둘러싼 건물은 별보다 빠르게 불을 밝혔고, 에딘버러 한 복판 칼튼 언덕의 관광객들도 어둠을 피해 시내로 내려갔다.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밤, 야경과 바람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 주섬주섬 배낭을 뒤져 작은 병을 꺼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산 스카치 위스키가 담긴 팩을.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 록에 입문한다면 위스키를 동경할 확률이 높아진다. 모름지기 술과 록이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다. 모든 술꾼이 록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대다수의 록 애호가들은 술을 좋아한다. 듣는 걸로 모자라 하는 걸로 뛰어드는 록커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특히나 그들은 위스키를 사랑해서 병을 들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 자신의 사내다움을 과시했고, ‘Take Your Whiskey Home’(반 헤일런), Whiskey’n Mama(ZZ 탑) ‘Whiskey Man(더 후)’ 같은 노래들을 만들어 위스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록에 빠져들던 소년은 그리하여 잭 다니엘, 짐빔 같은 브랜드를 맥주 맛보다도 빨리 알게 됐다. 


술을 마셔도 된다고 세상이 허락하는 나이가 됐지만 도무지 위스키는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맥주는 약하고 소주는 독하다의 이분법적 구분만이 있던 때라 그랬나. 위스키로 폭탄을 만드는 선배들의 위세에 너무 일찍 눌려서 그랬나. 싸구려 버번에 콜라나 타 먹으면서 건스 앤 로지스의 슬래시, 도어스의 짐 모리슨 등의 위스키 러버들과 동질감을 찾는 척 했다. 데킬라, 보드카 등 나중에 만나게 된 독주들은 어떤 선입견도, 위압감도 없었기에 그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 스코틀랜드를 가게 됐다. 음악 여행이었다. 틴에이지 팬클럽, 벨 앤 세바스찬 등 싱그러운 멜로디와 풋풋한 사운드로 우리의 90년대와 2000년대를 꾸몄던 스코틀랜드 뮤지션의 고향에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글래스고와 에딘버러를 둘러보며, 잉글랜드와는 다른 포근함을 느꼈다. 그 때 유독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스코틀랜드의 따사로운 음악을 만들어낸 풍토를 만끽한 마지막 날, 눈에 띈 위스키 샵에 들어갔다. 그래도 스코틀랜드에 왔는데 스카치 위스키는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커다란 오크통이 여기 저기 쌓여있고, 들어본 적도 없는 위스키들이 빼곡했다. 싱글 몰트라는 말도 알기 전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마스터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손톱만한 잔을 꺼내더니 이 오크통 저 오크통에서 조금씩 다른 술을 따라 건내줬다. 그 순간, 화가 났다. 아니, 이 맛있는 걸 자기들끼리만 마시고 있었단 말인가! 르데익(Ledaig) 9년산 한 팩을 샀다. 그리고 저녁의 칼튼 언덕, 뚜껑을 따고 한 모금을 삼켰다. 몸 안에 스며든 향이 비강을 타고 나와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싱글 몰트는 그렇게 나에게로 왔다. 처음으로 청계천에서 LP를 사와 아버지의 오디오에 걸어 놓던 날의, 그 의식같던 순간이 기억에서 살아났다. 청계천 4가와 8가에 음반 도매상들이 모여 있던 시절이었다. 


매주 청계천을 누비며 판을 사모으던 그 때처럼, 해외에 나갈 때 마다 싱글 몰트 위스키를 사모았다. 라벨뒤에서 찰랑거리는 황금색 액체를 보는 것 만으로도 무슨 맛일지 설래였다. 앨범 커버만 보고 음악을 상상해야했던 때와 같았다. 록에 빠져 들던 때의 소년은 가고 없지만, 위스키에 빠져 드는 아저씨가 거기 있었다. 소년은 언젠가 스코틀랜드 음악 여행을 꼭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꿈을 이뤘다. 아저씨는 언젠가 스코틀랜드 증류소 여행을 꼭 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직 꾸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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