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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Jan 05. 2021

1950년, 후퇴익 전투기의 등장 3편

1등에 밀려 기억되지 못한 후발주자 : 소련편

소련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항공기 개발회사가 적었다. 물론 미국과 비교해서 적은 편이지 절대로 적은 수는 아니다. 당시 미국도 비슷한 기조가 있기는 했지만, 소련의 경우 Mikoyan-Gurevich에서는 주로 전투기를 제작했고, Tupolev에서 대형의 폭격기를 제조하는 등 각각의 회사마다 주력으로 개발하는 기종이 달랐다. 참고로 우리에게 유명한 Sukhoi 설계국은 조금 슬픈 사연이 있는데 나중에 등장한다.


아무튼 당시 한국전쟁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항공기는 Mikoyan-Gurevich의 MiG-15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일한 핵보유국이었던 미국의 공격적인 전략 폭격기 개발 때문에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로 배치한 기체였다. 물론 미국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했던 소련의 경쟁의식도 한 몫했다.


P-36 Peacemaker concept art @Artstation

그래서 MiG-15는 마하 0.92를 넘어서면 안정성이 급격하게 무너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마하 0.92를 넘으면 저절로 에어브레이크가 작동해 안정성이 급격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즉, 제트 전투기의 가장 큰 장점이 빠른 속력인데 아무리 엔진이 좋아도 마하 0.9를 넘길 수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련이 미완성된 기체를 막무가내로 실전 배치한 것은 아니었다. 소련은 실전에 투입한 뒤 전력화하고 나서 이후 운용 중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차근차근 개량해나가는 방식으로 무기를 개발하기 때문이다. 이는 상황이 긴박했기 때문에 무기의 안전성과 신뢰도보다는 어느 정도 쓸만하면 바로 전선에 투입해야 했던 독소 전쟁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다소 임시변통적인 방식으로서 여러 회사들과 경합을 붙이고, 엄격한 평가를 거친 무기를 전선에 투입하는 미국과 대조된다. 하지만, 한국전쟁에 투입된 MiG-15와 나중에 소개될 다른 소련 전투기를 보면 미국에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하기에는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엄밀히 보자면 후발주자보다는 하나의 기체를 시작으로 개량형이 나오는 것이라 보는 게 정확하다.


Mikoyan-Gurevich Mig-17 Fresco


MiG-15 and MiG-17 comparison of wing fence

아무튼, MiG-17은 앞서 말한 마하 0.9를 넘어가면 안정성이 급격하게 무너지는 단점을 해결한 기체이다. 당연히 MiG 설계국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MiG-15가 배치되자마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래서 고속 비행에 적합하도록 MiG-15의 35도 후퇴익보다 더 젖혀진 43도 후퇴익을 적용하였다.

 

여기에 동체는 10% 정도 더 길어졌으며 동체 하부에는 항공기의 방향 안정성을 높여주는 Ventral fin이 장착되었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바로 실속막이 판(Wing fence)의 개수가 2장에서 3장으로 늘어난 점이다. 이 덕분에 동일한 엔진으로 MiG-15보다 40~50km/h 더 빠른 속도를 내며 마하 1에 근접한 속도에서도 안정성에 큰 문제가 없었다.

you can see MiG-17's ventral fin under the fuselage @fiddlersgreen.net

이러한 설계가 적용된 MiG-17은 1950년 1월 14일에 프로토타입인 I-330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적으로 처녀비행을 마쳤다. 이후 1951년 9월 1일에 MiG-17이라는 이름이 부여되었고 동년 8월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MiG-15가 1949년부터 실전 배치가 이뤄졌으니 거의 2년 만에 후속기가 나온 셈이다. (참고로, 그리고 1년 뒤에 MiG-17을 기반으로 소련 최초의 초음속 전투기 MiG-19가 개발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한참이 상황에서 MiG-17을 개발하면서 해결된 문제점들을 MiG-15에 적용하긴 어려웠고 기존의 MiG-15도 사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기에 MiG-17의 도입은 MiG-15의 생산을 위해 조금 미뤄졌고 결국 1952년 10월이 되어서야 첫 실전 배치가 이뤄졌다.


그러나 앞에서 잠깐 언급한 MiG-19와 같이 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2세대 전투기들이 속속들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MiG-17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련 최초로 후기 연소(Afterburner)가 장착된 항공기이며 우수한 기본 설계 덕분에 1960년대 일어난 베트남 전쟁에서 3세대 전투기와의 공중전에서도 밀리지 않고 활약한다.

MiG-19 Farmer @Science photo library

특히, 기체가 작고 가벼워 저속 근접 전투에서 기동성이 뛰어나 베트남전에서 고성능 레이더와 마하 2를 넘는 미군 전투기를 상대로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때 미국은 금문도 사건 이후 미사일 만능주의에 빠져있었는데 MiG-17은 오히려 미국에 큰 충격을 선사하였다. 게다가 MiG-17이 공중전이 아닌 요격 임무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요격기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참고로, MiG-15를 기점으로 모든 MiG 항공기들은 중국으로 넘어가 면허 생산되었는데, MiG-17도 마찬가지였다. 1955년부터 구형의 MiG-15를 대체하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간 MiG-17PF는 인민 공군의 Shenyang J-5로 면허 생산되었고 처녀비행은 1956년 7월 19일에 이뤄졌다.

 



참고자료 및 출처


배경 사진 출처 : MiG-17PF 'Fresco-D' GoodFon

Wikipedia, MiG-17

Wikipedia, Shenyang J-5

네이버 무기백과사전 MiG-17 전투기

네이버 무기의 세계 MiG-17 프레스코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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