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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정우 Sep 23. 2022

#5 1960년대 중국

중국의 첫 독자적인 항공기 개량

Nanchang Q-5 Fantan


1960년대 중국은 소련의 기술 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항공산업을 이끌어가야 했다. 게다가 대약진 운동으로 산업 기반이 크게 흔들리자 1950년대 말 소련에서 들여온 군용기들은 196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생산에 들어가 중국 공군에 인도될 수 있었다. 그렇게 1952년에 소련으로부터 들여온 Il-28 폭격기는 1965년이 되어서야 Harbin H-5라는 이름으로 역셜계에 성공해 자국 내에서 제작이 시작되었으며 1959년에 처음으로 날아오른 MiG-19의 면허 생산형인 Shenyang J-6은 1964년이 되어서야 중국 인민해방공군에 인도될 수 있었다.


이렇게 소련제 전투기들을 면허 생산하여 부대를 꾸려나가고 있었던 중국 공군은 무장 탑재능력이 빈약했던 소련제 전투기들에 불만을 느꼈으며 만약에 소련과 국경 분쟁이 일어날 경우 지상군을 지원할 공군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에 중국은 대소련 방위전략에 따라 지상공격 전용 기체 개발에 착수한다. 개발은 1930년대 이탈리아와 합작하여 세워진, 그리고 중일 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 1951년에 다시 설립된 난창 비기공사에서 개발을 맡았다.


이들은 J-6의 주익과 미익, 후방 동체를 그대로 가져온 뒤 연료 소모가 심한 저공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공격기라는 점을 감안하여 연료 탑재량을 늘릴 수 있도록 동체를 25% 늘려 연료 탑재량을 70% 증가시켰다. 그리고 공기 흡입구는 기수부가 아닌 동체 측면으로 옮겨져 레이더를 수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졌으나 아직 중국이 자체적으로 레이더를 제작하여 탑재할 기술력은 보유하지 못해 간단한 거리측정 레이더와 전파 고도계 그리고 항법 장비를 탑재하는 것에 그쳤다. 이밖에도 늘어난 동체는 별도의 내부 폭탄창도 가졌으며 면적 법칙을 적용하여 속도를 향상시키면서 동시에 탑재량을 늘릴 수 있었다. 이때 내부 폭탄창은 스텔스를 고려했다기보다는 저고도에서 공기 역학적으로 항력을 줄이고자 한 노력의 결과물이라 보는 편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리고 오늘날 Q-5는 내부 무장창에 무기가 아닌 보조 연료탱크를 수납한 채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는 Q-5가 동체를 연장하여 J-6보다 항속거리를 늘렸을지라도 여전히 중국 공군이 만족할만한 항속거리를 가지지 못했음을 보여주며 1970년대 중반 베트남과 남중국해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났을 때 원활한 함대 방공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던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Q-5의 설계 자체는 1960년에 완성되었으나 동시에 1960년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다보니 1961년에는 Q-5 개발 계획 자체가 중단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작업은 2년이 지난 1963년에 재개되어 1965년 6월 10일, Q-5은 성공적으로 초도비행을 마칠 수 있었으며 1969년부터 양산이 시작되어 1970년부터는 실전 배치되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Q-5는 태생이 MiG-19의 중국 면혀 생산형이라 할 수 있는 J-6을 기반으로 제작된 기체이다보니 J-6이 가진 문제점들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우선, 연료 탑재량은 J-6에 비해 개선되었을 뿐 여전히 부족하였으며 소련제 엔진의 고질적인 문제은 짧은 수명 때문에 엔진 점검이 빈번히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Q-5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F-100D와 비교해본다면 Q-5의 한계점이 잘 드러난다. 소련의 첫 초음속 전투기가 MiG-19라면 미국의 첫 초음속 전투기는 F-100이었으며 이 전투기 역시 이후로 더 뛰어난 성능을 가진 후속 기체들이 빠르게 등장하면서 공중전에서 물러나 지상 타격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때 Q-5와 비슷한 크기를 가진 F-100D의 항속거리는 3,200 km인데 반해 Q-5의 항속거리는 2,000 km이다.


1,000 여대가 넘는 수의 기체가 제작되었을 만큼 Q-5는 미얀마, 수단, 방글라데시, 북한 그리고 파키스탄에도 수출되었다. 이 중에서 수단과 미얀마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Q-5를 운용하는 중이다. 파키스탄 공군은 1983년에 도입하여 부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2010년까지 운용하였다. 오늘날에는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JF-17이 A-5C를 점진적으로 대체해나가 2011년에 와서는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되었다. 북한은 1982년에 40대의 기체를 중국으로부터 들여왔다. 하지만, 위성사진으로 관측된 적이 없어 1990년부터 1995년 사이에 퇴역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북한의 현재 주력 공격기가 Su-25인데 그 숫자가 3-40대에 불과하여 퇴역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북한의 특성상 2선급 항공기로 일선에서는 물러나 치장물자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이처럼 Q-5는 중국이 소련으로부터 적극적인 기술 지원을 받지 못하던 시기에 개발 및 제작되어 중국의 부족한 지상 공격 전력을 채워주었으며 그 성능 또한 나쁘지 않아 1,000 여대 넘는 물량이 생산되면서 J-6 다음으로 가장 많이 생산된 기체가 되었다. 그리고 비록 MiG-19를 개량한 기체였지만 Q-5는 중국이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최초의 전술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1950년대 개발된 MiG-19 전투기를 기반으로 1960년대 개발이 완료되고 1970년에 인도된 구식 기체이다보니 그 한계가 명확하여 오늘날에는 J-10이 근접 지원 임무를 맡게 되면서 Q-5는 일선에서 물러나는 중이다.

한편, 소련과 멀어지게 된 중국은 국내 유일한 전투기 연구 시설이자 생산 시설인 선양비행기연구소가 소련과 가까운 동북 지역에 있다는 점을 의식하여 제2의 항공기 제작업체를 내륙인 사천성 지방에 세우기로 했고, 그렇게 청두에 만들어진 연구소가 바로 훗날 Chengdu Aircraft Cooperation, CAC가 되는 청두항공공업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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