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Valerie Lee
Dec 31. 2023
나이 드는 거 무서운 M세대 있냐? 일단 저요.
할미 할배 자칭하는 3040을 위하여
12월 31일이다. 2023년 새 해에 세웠던 계획들, 목표했던 바를 다 실천했으나 끝에 남은 것은 더 쌓여간 실패의 기록. 많은 것을 시도했지만 성과는 없는 그런 씁쓸한 한 해였다.
2023 현재 내 나이는 서른둘. 내일이면 서른셋. 곧 눈 깜빡할 사이 "여자 나이 서른다섯이면 꺾인다"라는 그 공포스러운 나이 서른다섯이 온다. 영화 Tick Tick Boom의 주인공이자 전설적인 뮤지컬계의 거장도 서른부터 엄청난 초조함을 느끼다가 서른다섯에 겨우 처음으로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올렸으나 첫 공연 날에, 공연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창작자로서도, 그리고 특히 여자로서도 상징적인 나이다. 창작가로서 어떤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결혼을 못 했다? 이제부터는 더더욱 불리한 싸움이 시작된다는 뜻이라고 적어도 사회는 그렇게 말한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10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사랑의 결실도 꿈의 결실도 맺지 못한 청년이라... 그래 어쩌면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공평할지도. 인생이 달리기라면 그 달리기에서 뒤처진 사람... 한마디로 도태된 사람일지도.
하지만 우리는 100세도 넘게 살아갈 거라고 하는데 서른다섯이 정말 그렇게 늦은 나이일까? 정말 서른 다섯 이후의 여자는 사랑을 꿈꾸면 안 되는 것이고, 서른 다섯 이후의 창작자는 데뷔의 꿈이 박탈당해야 하는 것일까? 마흔이 넘은 이후에서야 사랑을 찾아 결혼한 수많은 여자들이 있고, 20대 30대 결혼 적령기에 결혼에 골인했고 사랑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돌아온 싱글들도 수두룩 하다. 서른 중반 이후에, 심지어 마흔 중반이 돼서야 창작자로서 첫 데뷔가 이루어진 사람도 많다. 반대로 누구보다 착실하게 예술가로서의 길을 밟아와 커리어의 정점에 도달한 어떤 배우는 최근에 스스로 인생이란 무대의 커튼을 닫아버렸다.
이처럼 나이가 가져다주는 어떤 초조함, 급박함, 기회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위기의식, 그에 따른 불안과 절망은 사실상 환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조금, 혹은 많이 느릴지라도 자신의 시간과 타이밍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에게 스물다섯 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생기와 찬란함은 부족할지언정, 사랑과 꿈을 좇겠다는 끈기는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림을 그리고 싶어 아이패드를 사러 간 할머니에게 손자를 데리고 오라며 면박을 준 직원의 이야기, 맥도널드에서 키오스크 주문에 진땀을 빼는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신체의 노화가 주는 서러움뿐 아니라 내 가능성이 무시당하고, 더욱 거세진 변화하는 물살 앞에 무기력해진다는 것. 아무리 건강을 챙기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지라도 80대 할머니 할아버지가 2030, 심지어 4050들과도 비슷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 나이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다. 삶이 유한하듯, 젊음도 유한하기에 가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면박을 당했다고 그대로 아이패드를 안 사고 디지털 드로잉을 포기해야 하나? 좀 쩔쩔맨다고 해서, 잠깐 신문물에 뒤쳐졌다고 해서 다음번, 다다음번에도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란 법 있나? 8090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에게 손까딱 할 힘과, 걸어 다닐 힘 정도 있다면, 잠깐 창피한 그 순간을 웃음과 해학으로 넘길 여유가 있다면 결국 그림을 그릴 것이고 맥도널드에서 주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제일 젊지만은 않은 우리 밀레니얼 세대여! 여태까지 살아오느라 수고 많았다. 뭔가를 이뤄낸 사람은 이뤄낸 대로, 아직 못 이뤄낸 사람은 더욱더 수고 많았다. 살아내느라, 혼란스러운 20대를 건너, 뭔가를 해냈어야 했다고 핍박받는 서른을 지나, 끝없는 불안을 버티고 여기까지 오느라 참 수고 많았다. 이제야 내가 누군지 좀 알 것 같고, 또는 이제야 내가 누군지 알아볼 생각을 할 여유가 생겼다면, 또는 여태까지와 새로운 자신을 만나고 싶다면 우리 쫄지 말고 또 한 번 "가즈아"를 외쳐보는 건 어떨까. 더 이상 20대가 아니라 늦었다고 낙담하지 말고, 불안함과 두려움에 마비되지 말고 이왕이면 같은 시간을 보내는 거 더 크게 감사하며 산다면 우리도 20대 못지않게 멋진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추신 :
정신 승리라고 해도 좋다. 정신이라도 승리해야 짧아지고 있는 텔로미어를 커버 칠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