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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lerie Lee Jan 16. 2024

"죽고싶다"가 입버릇이었던 엄마

그리고 그 밑에서 자란 나

엄마는 항상 툭하면 죽고싶다고 했다.


1. 아빠가 다정하지 않아서

2. 아빠와 내가 밥을 조금 먹어서

3. 아빠가 밥을 한번에 많이 하지말라고 해서

4. 내가 수학을 못해서

5. 동생이 공부를 안해서


엄마가 죽고싶은 이유는 항상 나, 동생, 또는 아빠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죽고싶은 진짜 이유를.


엄마는 성취욕이 강한 소녀였다.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본인의 얘기로는 omr을 밀려쓰는 바람에 서울대가 아닌 이대를 갔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나를 낳는 바람에 자신이 원하던 변호사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어렸을때는 정말 그 모든것이 내 탓만 같았지만... 엄마는 "나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집에서는 밥만 하고 청소만 하는 사람이 된 자신" 에 대해 분노한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짓는 밥과 청소에 대해 충분한 인정을 해주지 않는 아빠와 나에게 분노했다.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것 만큼 밥을 먹지않는것 = 자신의 요리와 노동이 인정 못받는것으로 생각하여 분노했고 죽고싶다고 까지 한것이다.


엄마는 항상 다른 사람의 직업을 하찮게 말했다. 회사원은 일개 회사원이라서, 연예인은 딴따라에 문란한 인간들이라서, 뭐는 뭐라서... 자신은 그저 주부밖에 못되었으니 뭔가 그 이상의 자아 성취를 한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껴서 온 말들이었다. 나는 그 덕분에 대체 뭐가 되어야 좋은 사람, 엄마 눈에 충분히 멋진 성공한 어른이 되는것인지 정말 헷갈렸다. 그리고 내가 정말 되고싶은 뭔가를 찾았을때, 그걸 쫓는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강한 수치심이 들었다. 그 수치심과 죄책감은 내 추진력을 방해했다.


엄마는 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자신이 행복할거라 말했지만... 엄마는 행복하지 못했다. 지금은 내가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취직하면, 결혼하면 행복할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엄마의 거짓에 속지 않는다.


만약 엄마가 "네가 취직을 안하고 결혼을 안해서 죽고싶다" 라고 말하며 진짜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잘못이 없다. 그걸 안다. 정말 큰 성과다. 물론 괴롭겠지만...그래서 정말 나약한 나도 엄마를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어쨋든 논리적으로 나마 그게 내 탓이 아니라는걸 안다.


나는 요새 정말 나에게 맞는 적성과 진로를 찾고 싶어하는 큰 욕망에서 비롯된 결정장애를 껴앉고 살고 있다. 그로 인해 공황장애까지 겪고 있는데 정신과 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그 이유를 알것 같다. 자신의 인정욕과 성취욕을 사회에서 분출하지 못한 어머니의 불행을 보고 자랐기에, 나는 꼭 사회에서 그 인정과 성공을 거두어야만 행복할 수 있을거라고 믿으니... 내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가 나에겐 절체절명의 선태일 수 밖에. 그리고 그 선택에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엄마는 결국 그 선택을 잘못해서 죽고싶다고 말하며 살았으니까.)  그 선택을 눈앞에 두고 공황이라는 공포가 올 수 밖에.


내가 왜 이런 공황을 겪고 있는지 이유를 알고 있지만서도 (정신과 의사보다 더 잘 알고 있지만) 그걸 내 의지대로 해결 못하고 있는것이 너무나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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